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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병남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백제문화 제71호
발행연도
2024.8
수록면
47 - 70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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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전주의 연원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16년(555)의 완산주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이것은 전북 전주가 아니라 경남 창원의 비사벌과 관련이 있다. 동일한 내용에 대해 『삼국사기』 「지리지」에서는 완산의 또 다른 이름이 비사벌이라고 명확히 하였다. 이것은 낙동강 하류의 가야 세력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한 것인데도 전북 전주와 혼동하고 말았던 것이다.문헌에서 전북 전주 지역이 완산이라고 확실히 나타나는 것은 신라 문무왕 때(672)이다. 그리고 신문왕 때(685년) 9주의 하나로 완산주가 설치되면서 주요 거점 도시로 발전하였다. 백제시대에 전주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던 것이다. 오히려 백제의 유구성과 전통성을 약화시켜 신라식 통치 질서를 확립하면서 성장한 것이다.따라서 전주 지역의 고대사를 유추해 보려면 고고학적 증빙에 의지할 수밖에 없으며, 이때 주목되는 곳이 서고산성이란 존재이다. 이 성은 삼국시대에 초축된 이후 통일신라시대까지 사용된 곳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관 기록은 조선시대에 黃方山, 西高山, 西高寺 등만이 언급되었을 뿐이다.그런데 1~3세기 전주의 마전·성곡·송천동·장동·평화동과 완주의 상운리·반교리·용흥리 유적 등을 보면, 문헌 기록에 나오지 않는 馬韓小國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 4세기 말~5세기 초의 완주 상운리 유적에서는 백제계 유물도 나왔다. 이것은 전주 일대가 백제의 본격적인 복속 아래 놓이기 시작하였던 증거이다.전주 서고산성의 축성과 활용은 이러한 상황과 연관된 것이다. 고고학적 여러 증빙에도 불구하고 4세기~7세기 사이의 기록인 『일본서기』, 『남제서』, 『삼국사기』에서는 익산·김제·부안·정읍 등만 언급되고 전주는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문헌적 미비를 보완하는 용도로서 서고산성에 대한 집중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조사 결과를 활용한다면 전주 일대의 고대사를 더욱 명확하게 복원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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