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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병희 (경기대학교)
저널정보
역사와교육학회 역사와교육 역사와교육 제21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587 - 642 (5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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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전국의 여러 지역이 근대 도시로 급격하게 전환되는 변화를 맞이하였다. 이 시기에 전주와 수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도시로 식민도시화 및 서구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전주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과 전주읍성이 있던 곳으로 조선 전기부터 전통도시로 발전한 곳이고, 수원은 정조의 주도 하에 계획적으로 건설된 화성과 화성행궁이 있는 곳으로 조선 후기부터 전통도시로 개발된 곳이다. 따라서 이 두 지역의 식민도시화 및 서구화에 대한 과정을 고찰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식민지적 근대 도시 연구에 있어 일제와 서구의 영향을 복합적으로 고려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에 본고에서는 일제의 식민지 경관 및 외래의 종교 경관이 어떻게 전주와 수원에 자리를 잡았으며, 그 과정에서 부설된 도로가 각 경관의 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 살펴보았다. 전주에 들어온 대표적인 종교 경관으로는 전동성당과 서문교회가 있으며, 전주에 들어온 대표적인 일제 식민지 경관으로는 전주신사와 전북도청 및 전주중부경찰서 등이 있다. 수원에 들어온 대표적인 종교 경관으로는 화성행궁 바로 앞에 위치한 북수동성당과 수원종로교회가 있으며, 수원에 들어온 대표적인 일제 식민지 경관으로는 수원신사를 비롯하여 자혜의원ㆍ수원군청ㆍ수원경찰서ㆍ경성지방법원 수원지청 등이 있다. 이러한 전주와 수원의 경관 변화에 대하여 비교해본 결과, 공통점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통도시의 근대 서구화 과정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던 요소 중 하나는 서구의 종교 경관이었다. 서구의 종교 경관은 사형장이나 공동묘지 등에 위치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유교가 지배 이데올로기인 지배층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중요성이 없는 반면에 선교사들의 입장에서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 선교에 유리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교 기지가 확보되면 재정이 뒷받침될 때 학교나 병원을 설립하는 등 종교타운의 건설이 뒤를 이었으며, 이는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다. 둘째, 전통도시의 식민도시화에 있어 정신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일본의 종교 경관인 신사였다. 신사는 원래 일본인들을 위해 세운 것이었지만, 조선인들에게는 참배를 강요하는 등 억압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신사는 일본인 주거지가 확대되면서 형성된 도로를 따라 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산에 건립하였는데, 이는 조선 왕조 또는 조선 정신문화의 상징물 위에 존재함으로써 그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것에 목적이 있었다. 또한 은연중에 식민지 지배를 위한 감시 장치의 기능도 하였다. 셋째, 일제는 서양의 종교 진출에 대해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경우에 따라 충분히 협조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일제는 근대화의 명분으로 교육기관 및 의료기관을 비롯하여 각종 관공서를 조선 왕조의 상징물 내부 또는 주변에 설립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였다. 여기에는 효과적인 식민통치라는 의도가 들어있었는데, 이러한 목적의 시설물을 설립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도로의 부설이나 개수 및 확장의 작업이 진행되었다. 나아가 우마차나 자동차의 편리한 이동을 통해 수탈을 가속화시킬 의도로 직선도로의 정비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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