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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허인욱 (한남대학교)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史叢(사총) 史叢(사총) 제111호
발행연도
2024.1
수록면
1 - 29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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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는 후백제의 수도였다. 936년 신검이 항복한 이후, 전주는 고려의 행정구역으로 편제되었다. 고려의 입장에서 전주는 후백제 지역, 특히 수도였던 전주는 다루기 쉽지 않은 곳이었다. 이곳은 고려에 반발하는 이들에게 상징적인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후백제를 통합한 왕건은 후백제인들에 대한 동질성을 가진 것으로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정적인 인식도 지니고 있었다. 이는 후백제 병합 직후 지역민의 이반을 염두에 두고 안남도호부를 설치한 것에서 엿볼 수 있다. 983년 2월에 전주목이 설치되었다가 당시 정세의 변화에 따라 전주순의군절도사, 안남대도호부 등으로 바뀌기도 했으나, 1022년에 전주목으로 정착된 이후에는 고려말까지 거의 변화없이 유지되었다. 후백제 멸망 직후 전주인들 가운데는 개경으로 이주한 이들이 존재했다. 여기에는 박영규와 같이 고려에 협조한 이들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이루어진 경우도 있으나, 전주를 구심점으로 후백제계인들이 세력을 형성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이유 또한 존재했다. 과거제가 실시된 광종대 이후 유방헌의 사례에서 보듯이 전주인이 중앙의 관리로 진출하는 사례가 발생하였는데, 이들이 광종의 개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앙관직에 진출한 이들과 지방제도의 변화로 인해 전주에서는 전주이씨나 전주박씨 등이 새로운 향리층으로 대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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