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양설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민족문학사연구소 민족문학사연구 민족문학사연구 제65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401 - 441 (41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글에서는 교유시를 비롯한 다양한 자료를 활용하여 중국 망명기 김택영의 교유 관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장건과의 교유를 새롭게 조명해 보았다. 임오군란직후의 결교로부터 중국 난퉁(南通)에서의 교유까지 40여 년간 이루어진 두 사람의 시문 교류를 살펴보면서, 두 사람이 유학을 신봉하고 고도(古道)를 숭앙하는 지식인이라는 공통분모로 인하여 서로 칭상(稱賞)하는 지기가 될 수 있었던 경위를 서술하였다. 그리고 장건이조직한 5차의 문학 활동에 김택영이 참여했던 양상을 자세히 정리함으로써, 김택영이 조선의 유민(遺民) 시인이자 조선의 문화 유적에 능통한 학자로서 장건의 문화 사업에 활발하게참여했던 실상을 조명하였다. 이와 같은 장건과의 교유는 김택영이 유민 시인으로서 중국에 널리 알려지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한편 김택영이 중국 망명기에 지은 교유시에는조국에 대한 근심, 망명 문인으로서의 한과 죄책감,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적개심 등 복잡한감정이 투영되어 있다. 김택영은 이러한 감정을 형상화하기 위해 ‘침울’한 격조와 ‘돈좌(頓 挫)’의 수법을 즐겨 사용하였다. 이 같은 뛰어난 예술적 특징을 지닌 김택영의 교유시들은 그가 당시 중국 문단에서 조선의 유민 시인으로서 인정받으며 커다란 문학적 성과를 이루는 데 일조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