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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저널정보
동아시아고대학회 동아시아고대학 동아시아고대학 제45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9 - 38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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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전은 소설적인 요소가 많지만 그 실체는 수용해야 된다고 본다. 가령 온달의 전사처인 아단성인 단양군 영춘면의 온달성은 물론이고, 忠州 일원까지 관련전설과 지명이 남아 있다. 온달이 허구에서 생성된 창작의 산물이 아님을 반증해준다. 그리고 온달전을 통해 얻는 정보도 적지 않다. 가령 삼월삼짇날 낙랑의 언덕에서 사냥하는 행사라든지, 공주의 婚姻 適齡期로서 16세는 왕실 혼인 연령의 實例를 알려준다. 문제는 온달전의 집필자와 집필 시기가 된다. 일반적으로 고려 중기의 뛰어난문장가인 金富軾이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온달전을 지은 것으로 추측하여 왔다. 즉 온달전은 김부식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온달전에 등장하는 ‘後周 (951~960)’는 고구려 이후에 등장하는 국가였다. 김부식이 온달전을 지었다면고구려와는 시간적으로 도저히 병존할 수 없었던 後周를 거론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온달전은 고려 이전의 통일신라시대로 소급된다. 『삼국사기』에는 소설문 형식의 글이 2편 있다. 都彌傳과 고구려 간첩승 道琳 이야기가 되겠다. 이 2편의 글은 원전이 한산주도독이었던 金大問의 『漢山記』 로 추정된 바 있다. 김대문의 글귀는 『삼국사기』에서 “賢佐忠臣 從此而秀 良將 勇卒 由是而生”라고 하여 逸文만 남아 있다. 이 글귀는 美文으로 정평이 나 있다. 명문인 온달전의 경우도 金大問의 『漢山記』에서 연유했을 가능성이다. 온달전의 절정을 이루는 漢水流域 회복이라는 고구려인들의 여망은 한산주를 배경으로 하였다. 따라서 온달전의 원형은 金大問의 『漢山記』로 추정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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