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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종민 (충북대학교)
저널정보
호서고고학회 호서고고학 호서고고학 제34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50 - 79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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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고려시대 중기에 들어와 청자 생산지역이 급증하면서 전국의 지방으로 窯場이 확산된 과정과 그 배경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히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12세기 전반 경이 되면 청자 제작지는 전남 해안가 일원과 경기도 일부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생산지에서 점차 전국성을 띠게 된다. 이때 가장 눈에 띄는 기술적 특징으로는 철화청자가 활발히 제작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철화기법의 활용과 철화청자의 소비양상은 13세기 초반 경까지 고려 중기의 청자생산이 1차로 확산되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둘째, 12세기 후반에는 한반도 전역에 걸쳐 청자 생산지가 급증하고 음각기법과 압출양각기법에 의한 제작방식이 보편화되는 2차 확산의 양상을 띤다. 이러한 상황은 13세기 중반까지 지속되었으나 이후 급격하게 생산지들이 줄어드는 현상을 보인다. 셋째, 12세기 전반 경에 청자생산지가 확대된 이유는 광범위하게 청자소비가 늘어난 점과 所체제의 와해 이후 民窯的 성격을 띠는 가마가 늘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명종 2년(1172)에는 백성의 流亡을 억제하고 각종 供物을 원활하게 수취하기 위해 지방관인 監務가 많은 지역에 파견되었으며 이즈음에 청자생산은 더욱 급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무인집권기의 가혹한 수탈과 대몽항쟁기의 민심 이반은 확대되어 가던 청자생산을 급격하게 축소시킨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궁극적으로 청자의 쇠퇴를 불러온 단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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