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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석길암 (금강대학교)
저널정보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동아시아불교문화 동아시아불교문화 제25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129 - 149 (2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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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삼국유사』 「가락국기」조와 「파사석탑」조를 중심으로 가락국의 불교 전래와 성격을 둘러싼 일연(一然)의 인식과 현대 역사학자들의 논의를 검토한 것이다. 이 기록들을 채록하고 있는 일연 자신은 허왕후의 도래와 함께 불교가 전해졌지만, 수용되지는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가락 불교의 수용은 왕후사의 창건을 기점으로 한다고 파악한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 학계에서의 최근 논의는 허왕후 도래시에는 불교가 전해지지 않았으며 왕후사 창건을 전후하여 불교가 가락국에 전래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와, 「가락국기」의 건국신화 성립에 신라 중대 의 정치세력 및 이후의 불교적 색채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삼국유사』에 나타난 가락국의 불교 수용 기사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의 둘로 나뉘어져 있다. 논자는 가락국의 불교 전파 시기는 왕후사 창건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4세기 말 무렵까지 가락국이 동아시아의 해상 교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고구려와 백제의 경우도 공인 연도만 372년과 384년일 뿐이며 공인을 위한 인지과정을 포함한다면, 불교의 전파 자체는 3~4세기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특히 허왕후로 상징되는 도래세력과 아유타의 연결을 굳이 불교를 매개로 한 각색일 것이라는 기존 역사학계 일부의 시각을 지양한다면, 다양한 문화교류의 측면을 고려해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1세기 전중반에 이미 중국, 한반도 북방 및 일본을 연결하는 해상 교역망에 김해 가락국 지역이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가락국기」의 불교 전래 기사 해석에 굳이 부정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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