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오제연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구술사학회 구술사연구 구술사연구 제6권 제1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163 - 195 (33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고는 국사편찬위원회가 수집한 구술자료를 바탕으로, 지역에서 영화를 통한 계몽과선전 활동의 주도권 변화 양상과, 이러한 활동이 지역민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살펴본 글이다. 해방 이후 1950년대까지 이동영사 활동의 주도권은 미 공보원이 갖고 있었다. 미공보원은 이동영사 활동에 필요한 기자재와 필름을 모두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이동영사활동의 중심이 될 수 있었다. 미 공보원은 각 지방의 문화원을 중심으로 이동영사 활동을벌였다. 많은 문화원들이 미 공보원과 관련 속에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1960년대 중반부터 문화원에 대한 한국정부의 개입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1965년 문화원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 지급을 명문화한 <지방문화사업조성법>의 제정은 문화원을 매개로 한 이동영사 활동의 주도권이 미 공보원에서 정부로 넘어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후 지방 문화원의 핵심 사업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시책 및 업적의 홍보”가 되었다. 계몽과 선전을 위한 이동영사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대통령에 대한 호감과 미국에 대한 선망이 싹트기도 했다. 선거 때는 정부와 여당이 이동영사 활동을 선거에 이용하기도했다. 그러나 이동영사를 통해 계몽과 선전 영화를 보았던 주민들에게는 계몽과 선전 내 용 보다는 ‘신기함’ 그 자체가 더 중요했다. 또한 이동영사 활동은 지역 주민들에게 ‘만남’ 과 ‘오락’의 자리를 제공했다. 특히 많은 주민들은 이동영사 활동을 과거 ‘남사당패’와 유사한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계몽과 선전 영화보다 재미있는 극영화 시청을 열망했다. 한마디로 생산자나 전달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수용자들이 이동영사 활동을 전유했기 때문에 그 정치적 효과에는 일정한 한계가 존재했던 것이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38)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