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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승원 (수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연구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110호
발행연도
2022.3
수록면
45 - 71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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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918년(大正 7) 조선총독부 陸地測量部에서 제작한 지도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구축한 『삼일운동DB』를 이용하여 연천군에서 발생한 3‧1운동을 지도에 표기함으로써 전파양상과 특징을 밝힌 연구이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정리된 연천군 연천지역의 3‧1운동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로는 수로중심의 대규모 만세시위 확산이다. 연천지역은 1919년 3월 21일 백학면 두일리 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시작되면서, 4월 10일 관인면 사정면 초과리의 만세시위를 끝으로 약 한 달간 15차례의 만세시위 및 시위시도가 일어났다. 그런데 이러한 시위전파양상을 당시 지도에 옮겨서 살펴보면 임진강과 한탄강을 중심으로 한 수로와 경원선을 이용한 육로로 시위가 전파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그러나 남북으로 관통하는 경원선의 연선에서 일어난 차탄리나 전곡리의 시위불발에서 보이듯이, 철도와 같은 주요 교통로는 일제의 감시가 삼엄하여 시위확산에는 제약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수로의 경우에는 육로보다는 상대적으로 감시에서 자유롭고 현재까지 확인된 11개의 포구와 나루터가 대부분 서해안과 한강에서 오는 물류를 거래하기 위한 포구여서, 인구이동도 많고 사람이 모이기도 좋은 장소라는 점이 대규모 만세시위가 조직적으로 일어나는데 적합한 환경을 조성하였다. 두 번째로는 지역별로 구분되는 만세시위의 특징이다. 연천군의 북쪽에 위치한 중면과 동쪽 한탄강에 위치한 관인면에서는 기독교인이 만세시위에 참여한 것이 확인되고, 마찬가지로 북쪽에 위치한 북면‧서남면‧동면일대에서는 천도교인이 만세시위에 참여한 양상이 확인된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 구체적인 기독교와 천도교의 활동과 관련하여 관계성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로는 시위형태에 따른 특징이다. 아직까지‘대규모’만세시위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은 되어 있지 않지만 태극기를 가지고 200명이상의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는 것은, 당시 시대상황에 비추어 보거나 面이나 里단위의 인구분포상 결코 적지 않으며 비 조직적으로 동원된 인원이라고 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3월 21일 백학면 두일리의 200명이상의 만세시위와 3월 29일 적성면 장파리의 20여명이 참여한 만세시위의 양상을 구분하여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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