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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성순 (전남대학교)
저널정보
보조사상연구원 보조사상 보조사상 제64호
발행연도
2022.11
수록면
395 - 425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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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난계도륭이 일본으로 건너갈수 밖에 없었던 당시 남송의 정치와 선종교단의 상황에 대해 알아보고, 일본에서의 그의 족적을 확인하는 역사적 시각에 중심을 두기로 한다. 난계도륭이 활동지 국가를 옮겼던 것은 13세기 중반의 남송에서 몽골군대에 의한 침략전쟁이라는 외부상황에 기인했던 정황이 더 커보인다. 또한 입송 일본 유학승들로 인해 일본 불교계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도 그가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는 선택을 돕는 한 원인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일본불교계에서는 에이사이에 의해 1차적으로 임제선이 전래된 이후, 1246년 난계도륭이 일본에 건너가게 되면서 일본의 선불교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남송의 선승과 입송 유학승들에 의해 선뿐만 아니라, 중국 강남의 종교문화와 유학까지 소개되어 일본사회에서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선승들은 일본의 구불교 종단들과 대립하는 과정에서 치국(治國)과 치심(治心)을 겸비한 불법으로서 선종의 의미를 부여하고, 막부정권의 정치 자문에 응하기 위한 현실적 필요가 있었다. 정리하면, 가마쿠라 무사정권의 입장에서는 기존 황권이나 귀족세력과 결탁된 구불교종단보다는 남송의 선법, 즉 총림청규에 기반한 중국 임제선을 환영했으며, 난계도륭 등의 선승들은 이에 충실히 부응하면서 중국의 문예와 유학까지 일본에 전파했던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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