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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안성현 (중부고고학연구소) 박동선 (중부고고학연구소)
저널정보
백산학회 백산학보 백산학보 제123호
발행연도
2022.8
수록면
89 - 118 (30page)
DOI
10.52557/tpsh.2022.12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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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동 보루는 백제 고분으로 인식되었으나 몽촌토성 출토 유물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재분석이 이루어졌으며, 고구려 군사시설로 재인식되었다. 이 글에서는 구의동 보루 내 수혈주거지와출토유물의 동시성을 인정한 후 유물의 적재 방식을 중심으로 보루이 시기적 경관과 성격의 변천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 결과 구의동 보루는 세 시기로 나누어짐을 밝혔다. 1기에 속하는 유구는 배수로와 토광인데, 수혈주거지가 시설되면서 이 시기의 유구가 훼손되어 정확한 양상은 알 수 없다. 1기의 성벽은 대형의 할석으로 허튼층쌓기를 하였으며, 돌출부-치- 는 설치되지 않았다. 보루 내부의 정확한 구조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보루의 규모와 내부에 토광및 배수로가 설치되었음을 고려할 때 다수의 인원이 상주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2기에는 경관이 획기적으로 변한다. 성벽에는 돌출부가 가축되며, 내부에는 수혈 건물지가 설치되었다. 주거지 내부에는 최대 7명의 병력이 상주할 정도의 면적은 확보된다. 다만, 고구려 군대의 편제를 고려할 때 1오(伍)인 5명 정도가 주둔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주둔 병력이 사용하였던 무기나 생활용기의 수량은 알 수 없다. 이와 더불어 보루의 남쪽에도 전을 깐 유구와 토광및 석렬이 설치되면서 보루의 중요성이 이전보다 높아졌거나 아니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음은분명하다. 2기와 3기를 구분하는 기준은 출토된 유물을 주거지 내부에 적재될 수 있는가 여부인데, 주거지 내부에 구들이 기능을 하였다면 출토된 유물을 적재할 수 없으므로 조사 당시의 모습으로 확장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또, 이전 시기와 달리 창고와 같은 특수 시설로 성격이 변화하였고, 그 상태로 폐기되었음을 시사한다. 이 시기 창고 내부에 병력이 거주 할 수 없으므로 관리는 구의동 2보루에 상주한 병력이나 주변 보루의 병력이 교대로 근무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구의동 보루는 관방유적으로 축조되었으나 창고로 성격이 변화였고, 그 상태로 폐기됨으로써유구 내부에서 다른 주거지와 달리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양상은 아차산 일대 고구려보루를 비롯해 남한지역 고구려 성곽 및 보루에도 적용할 수 있다. 따라서 구의동 보루와 아차산일대 고구려 보루에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진다면 475년에서 551년간 이루어진 고구려의 한강유역 지배방식을 입체적으로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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