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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현수 (성균관대학교)
저널정보
반교어문학회 반교어문연구 반교어문연구 제62호
발행연도
2022.12
수록면
125 - 156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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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7월 5일 일본어신문 朝鮮新聞 에는 홍사용이 ‘취인정지자’가 되었다는 기사가 실린다. 백조 3호의 발행을 위해 토지를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한 돈을 갚지 못했음을 뜻한다. 대개의 문학사에서 홍사용에 대한 논의는 백조 와의 관련 속에서 행해진다. 홍사용은 <휘문고보>에서 정백, 박종화와 함께 문학에 뜻을 두는데, 당시 홍사용과 정백의 막역한 관계는 靑山白雲 에서 나타난다. 이후 홍사용은 정백, 박종화와 더불어 서광 , 문우 등에서 활동을 했다. 백조 1호는 고급 종이를 사용하는 한편 첨단의 장정으로 꾸몄는데, 거기에서도 백조 에 대한 홍사용의 자부를 느낄 수 있다. 이 글은 식민지시대 경성 지도를 통해 ‘문화사’의 위치 역시 정확히 하려 했다. 홍사용은 백조 1호에 권두시 <白潮는흐르는데별하나나하나>와 나머지 네 편의 시를 발표했다. 백조 는 모두 외국인의 명의로 발행되었지만, 백조 가 ‘신고’만으로 발행된 것은 아니었다. 백조 2호의 발행을 주도한 인물은 홍사용이었으며, 그는 시 <봄은가더이다>와 ‘慶尙道民謠에서’ 옮겨왔다는 <民謠> 등을 발표했다. 백조 3호는 1년 반이라는 시간적 거리를 두고 나왔다. 홍사용은 백조 3호에 권두시를 비롯한 모두 여섯 편의 글을 발표했다. 백조 2호와 3호의 사이에 문학 장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문학 장의 변화가 백조 발행에 어려움으로 작용했지만, 역설적으로 그 변화를 추동하는 것이 백조 였다. 동아일보 , 개벽 등에 자리 잡지 못하고 ‘취인정지자’라는 멍에까지 썼지만, 백조 발행을 위해 매진했던 홍사용의 노력과 애정은 빛이 바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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