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권정은 (원광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비교문학회 비교문학 비교문학 제73호
발행연도
2017.10
수록면
5 - 32 (28page)
DOI
http://dx.doi.org/10.21720/complit73.01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논문은 조선전기 계회도와 당대의 유명 문인 이행이 남긴 계회도 시를 대상으로 계회 문화의 특징과 의의를 살펴본 것이다. 현재 기록이 남아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계회는 고려시대 최당(崔?, 1135~1211)이 결성한 ‘해동기로회’로, 이때부터 계회에 참석했던 인물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는 전통이 형성되었다. 그런데 조선 전기에는 정치적 부침 속에 신진 관료인 낭관(郎官)을 중심으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계회와 계회도가 마련되었다. 조선 전기 계회도는 인물화의 성격을 지녔던 고려시대의 전통와 결별하고 새로운 양식을 수립했다. 중국 백거이의 ‘향산구로회’와 같은 관습적 양식을 뛰어넘어, 계축 형식의 전형을 마련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 조선 전기의 계회도는 여타의 그림과는 달리 인명록과 산수화를 동시에 배치하는 개방적 수용성을 통해 기록과 감상이 가능한 작품이 될 수 있었다. 산수화는 당시에 유행했던 회화의 주류를 반영한 결과인데, 화면 속에 당시 회합을 연상할 수 있는 장면을 포함하여 계회의 기록이라는 계회도 본연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계회도를 읊은 시는 그림의 이면에 놓인 함의를 부각시켰다. 특히 이행의 시는 제목에서 ‘계회도’라는 용어를 명시하고 있으며, 보다 전형적이고 실질적으로 계회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단서를 포괄함으로써 그 특징을 분명히 나타냈다. 더불어 이행은 그림과 함께 시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동시에 부각시켰는데, 결국 같은 목적을 위해 각기 장르적 장점을 드러내는 그림과 시의 상보적 기능을 통해 조선 전기 독자적인 계회 문화의 전통은 확고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