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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명수 (계명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경상학회 한일경상논집 한일경상논집 제75권
발행연도
2017.5
수록면
137 - 166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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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일제강점기 재조일본인에 의한 신탁회사 경영을 분석한 사례연구이다. 특히, 이 논문에서는 조선토지신탁주식회사의 사례를 검토하였다. 지금까지 한국금융사에 관한 많은 연구들이 은행사에 집중되어 온 것을 감안할 때, 일제강점기 신탁회사의 경영변동에 관한 첫 번째 본격적 분석인 이 연구는 한국 근대 금융사 연구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1919년 2월에 설립된 朝鮮土地經營株式會社는 한국에서 부동산 관리 업무, 즉 토지?부지의 분양 업무를 내용으로 기업화한 최초의 회사였다. 조선토지경영은 동사의 설립을 주도한 三好和三郞의 소유 부동산을 기반으로 하여 설립된 개인 부동산 회사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末森富良과 같은 회사 내 개혁파들은 大正土地建物株式會社의 합병을 계기로 三好의 독재적 경영 스타일을 비판하고 전문경영자로 荒井初太郞을 영입했다. 조선토지경영은 1920년대 장기불황에도 불구하고 유독 발흥하던 신탁업에 주목하고 1927년 7월 정관을 개정하여 1928년부터 일반신탁 업무를 겸영했다. 1930년에는 아예 조선토지신탁주식회사로 전환하였다. 토지신탁은 주로 부동산신탁보다는 금전신탁을 위주로 운영되었다. 1934년 7월 현재 총 신탁재산에서 차지하는 금전신탁의 비율은 99%에 달했다. 토지신탁은 이렇게 마련된 자금을 주로 부동산 담보 대출이나 유가증권 담보 대출 그리고 은행 예금의 형태로 운용했다. 토지신탁을 포함한 기설 5개 신탁회사는 1934년까지 1932년 신설된 조선신탁주식회사로 합병되었다. 조선총독부가 기설 신탁회사와 조선신탁 사이의 합병과정을 지원했다. 1934년 9월 이후 한국에는 조선신탁이 유일한 신탁회사로 남게 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조선신탁은행, 한국신탁은행, 한국흥업은행을 거쳐 1960년 1월 한일은행이 되었다가 현재의 우리은행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토지신탁에 대한 연구는 그간 은행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한국 근대 금융사 연구에 보다 풍부한 다양성을 제공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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