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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효근 (세종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서양중세사학회 서양중세사연구 서양중세사연구 제41호
발행연도
2018.3
수록면
41 - 69 (29page)
DOI
http://dx.doi.org/10.21591/jwmh.2018.41.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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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네브 컨시스토리는 엄격하고 강압적이며 비타협적인 칼뱅 종교개혁의 성격을 입증하는 대표적인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칼뱅 시대 컨시스토리 회의록에 나타난 컨시스토리의 운영과 이에 대한 민중의 대응을 직접 관찰해보면, 칼뱅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신정정치’라는 별명은 칼뱅 종교개혁의 성격과 내용을 오해하게 만드는 지나친 용어임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컨시스토리 회의록 속에서는 인간이란 율법에 맞춰 살 수 없는 존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중단할 수 없다고 여겼던 칼뱅의 본심을 접할 수 있다. 본고는 정치적 급변 이후 칼뱅이 주네브에서 실권을 잡았던 1555년의 컨시스토리 회의록을 분석하면서 컨시스토리와 칼뱅 종교개혁에 대한 세간의 경직된 인식을 재고하고자 시도하였다. ‘칼뱅의 주네브’ 시작의 원년이라 여겨지는 1555년의 컨시스토리 회의록에서도 여전히 주네브 사람들은 도박에 빠져 있거나 가족들과 심각한 갈등을 빚는 등 교화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나아가 주네브로 유입되는 수많은 사람들의 존재는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만들어냈다. 1555년의 컨시스토리 회의록은 우리에게 주네브의 민중규율화는 설득에 기반을 둔 점진적인 행위였으며, 일부 주네브 민중들은 종교개혁의 지침을 자신의 방식대로 재해석하여 새롭게 적용하기도 했던 적극적 수용자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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