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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영희 (국립광주박물관)
저널정보
동악미술사학회 동악미술사학 동악미술사학 제24호
발행연도
2018.12
수록면
111 - 136 (26page)
DOI
https://doi.org/10.17300/dah.2018.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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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 미륵불 조성 입찰은 당시 최대 규모의 불사를 둘러싸고 조각승 금용 일섭과 일본에서 유학한 조각가 정관 김복진이 경쟁한 사건이다. 이는 근대 불교미술의 조성에 종사한 서로 다른 두 집단의 대표가 한 곳에서 맞닥뜨린 일로, 이후 각자의 불교미술 조성 뿐만 아니라 근대 불교미술계의 경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1935년 3월, 화재로 김제 금산사 미륵전 본존이 전소된 후 금산사 측에서는 새로운 불상의 조성을 입찰에 부쳤다. 1935년 7월 사찰 측에서 조각승 일섭과 조각가 김복진에게 각각 ‘높이 3자 3치의 立佛’을 제출받아 심사한 결과 김복진이 선정되었고 일섭은 완성된 불상의 수리를 담당하였다. 이 입찰의 심사 결과는 단순히 당시의 종교적·미적 선호에 따른 것이 아니며, 당시 입찰에 관계되었던 금산사 주지 黃成烈, 금산사 미륵불의 재건에 거금을 시주한 金水坤, 입찰 심사위원 金水坤, 金殷鎬 등 여러 인물과 관계된 사건으로 사찰불사계에서 전통 세력과 근대 혹은 외부 세력 사이의 경쟁이기도 하였다. 심사 결과 김복진의 불상이 선정되었고, 이 결과는 당시 ‘사실성의 획득’을 우선적인 가치로 삼는 구상조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조선 조각계 흐름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과거의 한국미술 가운데 8세기 통일신라 미술양식을 美術史上 정점으로 파악하는 시각이 존재하였던 사실로 미루어 보아, 당시 입찰에 관여하였던 미술계 인사 및 지식인의 시각이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입찰 이후 일섭과 김복진은 각기 이후 자신의 작품활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입찰 이후 일섭이 석고·시멘트 등 새로운 재료의 사용을 시도하는 점이나, 김복진이 조선 후기 불상양식을 보이는 상을 조성하는 양상 등에서 두 사람의 향후 작품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친 근대 불교조각계의 사건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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