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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진은 조각만으로 한정할 수 없는 이름이다. 유가문명권에서 서구근대문명권으로 진입해 들어가는 과정에서 사상과 미학의 사유틀을 개조한 사상가이자 서구근대형 문예의 시대를 개창한 이론가였으며 무엇보다도 계급과 민족해방을 실천한 사회운동가이자 혁명가요, 프로문예운동 지도자였다.
또 김복진은 살아 생전에 이미 절정의 평가를 받고 있던 조각가였다. 1938년 6월 4일자 『동아일보』는 「동반자는 석고」라는 기사를 통해 김복진을 가리켜 “이미 입신경에 들어선” 조각가로 “세계 조각사에 일세기를 획할 걸작이 숨은듯”한 조각가라고 찬사를 퍼부었던 것이다. 이런 찬양은 그가 보여준 작품세계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하지만 찬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기자는 김복진에게 “현대 조선 조각 미술계의 원로”라는 칭호를 헌정했다. 이 칭호는 김복진이 자기 작품에만 매진한 인물이 아니라 조선 조각계의 형성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실제로 김복진은 서구근대조각을 이식해 정착시킨 거장이자 문하를 개창해 20세기 조각계를 형성한 교육자였다. 서구 인상파조각을 수용하여 조선 고전 조각과 융합시킴으로써 20세기 시대양식을 구현한 작품을 남겼으며, 서구근대 미술 전반을 수용하던 동경미술학교 재학 중에 조각 교육을 시작하여 별세하던 순간까지 문하에 제자를 받아들여 교육해 나간 위대한 교사였던 것이다. 이글은 바로 저 김복진의 조각교육 영역을 집대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또 김복진은 살아 생전에 이미 절정의 평가를 받고 있던 조각가였다. 1938년 6월 4일자 『동아일보』는 「동반자는 석고」라는 기사를 통해 김복진을 가리켜 “이미 입신경에 들어선” 조각가로 “세계 조각사에 일세기를 획할 걸작이 숨은듯”한 조각가라고 찬사를 퍼부었던 것이다. 이런 찬양은 그가 보여준 작품세계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하지만 찬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기자는 김복진에게 “현대 조선 조각 미술계의 원로”라는 칭호를 헌정했다. 이 칭호는 김복진이 자기 작품에만 매진한 인물이 아니라 조선 조각계의 형성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실제로 김복진은 서구근대조각을 이식해 정착시킨 거장이자 문하를 개창해 20세기 조각계를 형성한 교육자였다. 서구 인상파조각을 수용하여 조선 고전 조각과 융합시킴으로써 20세기 시대양식을 구현한 작품을 남겼으며, 서구근대 미술 전반을 수용하던 동경미술학교 재학 중에 조각 교육을 시작하여 별세하던 순간까지 문하에 제자를 받아들여 교육해 나간 위대한 교사였던 것이다. 이글은 바로 저 김복진의 조각교육 영역을 집대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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