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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임준철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한문학회 한국한문학연구 한국한문학연구 제60호
발행연도
2015.12
수록면
7 - 49 (4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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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 전기에 발견되는 도연명 시에 대한 특징적 계승 작업들을 典範의 확충과 변주, 그리고 재인식이란 관점에서 살펴본 것이다. 현전 자료를 중심으로 볼 때 조선 전기 和陶詩에서는 李公煥의 『箋注陶淵明集』(『箋注靖節先生集』), 『東坡先生和陶詩』, 그리고 『精刊補註東坡和陶詩話』의 영향이 확인된다. 조선 전기 시인들의 주요한 도연명 시 수용 경로가 湯漢 등의 주석과 蘇軾의 화도시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도연명의 시라는 전범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소식과 탕한을 경유해 이루어진 셈이다. 소식의 화도시에 영향을 받긴 했지만, 조선 전기 화도시들은 이전 시기는 물론 동아시아 화도시의 역사에서 보더라도 특징적인 부분이 발견된다. 김시습은 소식처럼 집중적으로 화운[細和]했다는 점에서 이전보다 전범에 대해 더 포괄적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창작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소식과 달리 현실에 대한 憤?을 날카롭게 표출하였고, 農耕 주제/제재 시들에 화운한 작품에서는 본인의 실제 생활경험이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투영하였다. 한편 남효온과 김종직은 소식이 和韻하지 않은 도연명 시를 계승하였다. 남효온은 도연명 「의만가사」를 변주하는 방식으로, 김종직은 「술주」 시에 대한 재인식이란 방식으로 전범을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발언으로 환치시켰다. 김종직에 의해 강조된 도연명 「술주」 시의 慷慨한 비판정신은 도연명 시 안에 내장되어 있는 또 다른 면모이긴 하지만, 김시습?남효온?김종직에 의해 집중적으로 계승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김시습의 화도시가 제재 등에서 소식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라 하더라도, 기존 연구처럼 소식의 영향만을 편면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들의 화도시가 비록 소식을 경유했다 하더라도 소식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 또한 발견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조선 전기 문인들은 소식과는 일정하게 다른 전범 인식 태도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김종직은 1474-5년 사이에, 김시습은 대체로 1473-83년 사이에, 남효온은 1486년에 각기 도연명 시를 계승한 작품을 창작했다. 김시습은 癸酉靖難으로 스스로 세상을 등졌으며, 남효온은 昭陵復位 상소로 세상으로부터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 그리고 김종직은 사후 「和陶淵明述酒」 시로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난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렇게 비슷한 시기 상호 연계된 문인들이 빚어낸 전범 인식과 계승 방식의 변화는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 화도시사에서도 특징적 현상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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