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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재경 (서울시립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연구 국학연구 제50집
발행연도
2023.3
수록면
183 - 229 (47page)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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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병자호란 직후 조선 사회에 퍼진 명·청전쟁 관련 풍문과 가짜뉴스를 『계암일록』을 주 자료로 하여 상세히 추적하였다. 병자호란이 종결된 직후인 정축년(1637)에는 명군이 청군의 퇴로를 끊었다거나, 명 수군이 조선 연해에 찾아와 조선의 상황을 양해해주었다는 내용의 풍문이 전파되었다. 이는 대명의리를 배신해야 했던 조선의 부채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무인년(1638) 상반기에는 일본과의 관계 긴장을 배경으로 일본군이 조선을 통과해 청을 치러 갈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홍타이지의 몽골 원정에 관한 심양발 보고 및 평안도에 찾아온 명 수군 관련 소식을 바탕으로 명과 몽골·일본 등이 연합하여 청군을 격파하고 있다는 풍문이 활발히 전파되었다.
무인년 하반기 청의 중원 원정이 전개되자 풍문의 내용은 원정의 처참한 실패를 강조하는 쪽으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풍문은 어느 정도 실상을 반영하기도 했으나, 본질적으로는 청의 원정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려는 의도의 소산이었다. 경진년(1640) 하반기부터는 다시금 명군의 적극적인 공세로 청의 기세가 꺾이고 있다는 방향의 소문이 이어지게 되는데, 이는 당시 청이 조선에 대해 척화신 체포 등 강력한 압박을 가하고 있었던 데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으로 추측된다.
이처럼 조선 사회에서는 명·청전쟁에 관한 풍문이 지속적으로 전파되고 있었으며, 그 내용은 당시의 상황 전개와 다를 뿐만 아니라 현대의 우리가 예상하기 어려운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대외정보가 비공식적으로 유통되어 가짜뉴스가 섞이기 쉽던 당시의 정보 전파 환경, 명의 국력을 낙관적으로 바라보았던 조선인들의 정세인식, 그리고 청에 대한 반감이 함께 작용하고 있었다. 당대인들은 대명의리론과 전근대적·비공식적 정보 유통이라는 시대의 한계, 그리고 확증편향과 가짜뉴스라는 통시대적 현상의 제약을 받고 있었다. 병자호란 직후 명·청전쟁에 관한 풍문과 가짜뉴스는 조선인들의 정보에 대한 갈증과 청에 대한 적개심의 소산이었던 것이다.

목차

요약
1. 서론
2. 명·청전쟁 소강기(1637~1638) 전쟁 관련 풍문과 가짜뉴스의 전개
3. 명·청전쟁 격화기(1639~1641) 전쟁 관련 풍문과 가짜뉴스의 흐름
4. 풍문과 가짜뉴스의 형성·전파를 둘러싼 배경들
5. 맺음말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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