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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영은 (한양대학교)
저널정보
동방한문학회 동방한문학 동방한문학 제98호
발행연도
2024.3
수록면
263 - 296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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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村 南尙敎(1784~1866)는 그동안 학계에서 주목받는 시인은 아니었다. 그는 천주교로 죄를 얻어 집안은 적몰되었고, 문집은 온전히 보존되지 못했었다. 하지만 우촌이 지닌 시적 재능과 위상만큼은 당대와 후대의 문인들이 입증하였다. 남상교는 주로 일상에서 겪는 소소한 경물과 미묘한 감정을 정치한 시선으로 풀어내는 작가로 평가되었다. 이러한 그가 불혹의 나이에 겪은 연행이란 체험은 우촌의 시 세계에서 도약과 확장을 이뤄냈다. 우촌은 스스로 자신의 문학적 재능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시인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충분히 인지했고, 詩道에 대해서도 자신했다. 하지만 남상교는 정치적으로는 소수파인 남인에 속했고 오랫동안 조정에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남상교에게 있어 연행이라는 체험은 ‘유토피아(Utopia)적 열망’ 그 자체를 보여줄 기회였다. 연경이라는 도시 체험과 신위를 통해 만난 청나라 문인들과의 친교는 지식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경로를 열어주었다. 또한 우촌은 연행을 통해 무엇보다 청나라 과학과 문화의 우수성에 대해 놀라워했다. 이러한 경험은 그에게 청나라를 더는 이적이 아닌 뜻을 함께할 대상으로 파악하게끔 한다. 이 시기 노론계 문인들이 春秋義理를 주제로 삼아 연행 관련 기록에서 상투적인 이야기만 반복했다면, 남상교는 18∼19세기 남인이 견지했던 청나라에 대한 ‘實理’를 추구하는 태도를 계승하면서도 ‘청나라’와 ‘청나라 문화’를 분리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청나라 자체를 긍정적으로 인식하였다. 이 같은 인식은 연행 전후 우촌의 인적ㆍ물적 경험으로 인해 청나라를 해방적 공간으로 인지한 데에서 비롯된다. 남인이자 신앙인으로서 조선에서는 늘 주변부에 머물렀던 우촌이 연행이란 체험을 통해 비로소 정신적 소통과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공간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청나라 문인들은 우촌의 시적 재능을 알아보았고, 시인으로서 자긍심 또한 높여주었다. 이에 우촌이 시에서 중국을 여러 차례 고향이라 일컫는 것은 이들과 유대를 공고히 하고, 자신의 웅지를 실현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우촌에게 청나라는 더 이상 이적이거나 위력적인 타자가 아니었다. 당대 조정을 장악한 노론계 사대부와 달리 우촌은 청나라가 중화와 다르다고 해서 배척할 것이 아니라 큰 뜻이 있다면 포용하고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청나라를 선진 문명국으로 조선이 배워야 할 대상으로 파악했다. 이는 선대의 남인이나 북학파보다도 더욱 적극적인 면모를 띄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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