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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성리 (인제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회사학회 사회와역사 사회와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제142호
발행연도
2024.6
수록면
217 - 258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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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1951년 음력 설날 다음날인 2월 7일, 산청군과 함양군에서 있었던 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의 전모를 최초로 추적했다. 당시의 사건과 관련하여 문서와 사진조차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필자는 동일 작전명령과 군부대에 의한 거창 사건의 군사재판 기록과 선행 연구, 저서와 언론 등에서 띄엄띄엄 언급되는, 본 사건 관련 내용들을 수집 및 분석했다. 아울러 당시의 사건을 기억하는 생존자와 유가족들의 증언을 참고하여 다음과 같은 논지를 전개했다. 2장에서 산청군과 함양군의 민간인들이 왜 국군의 공비토벌 작전 과정에서 희생되어야 했는지를 당시의 정치적·사회적 상황, 지리산 빨치산의 형성 과정,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군부대의 창설 목적과 군사 활동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조선 청년들의 항일 유격대로 시작한 지리산 빨치산은 3번의 변모 과정을 거치며 좌익화 되어갔다. 해방 정국에서 친탁과 친미를 지지하는 이승만 정부가 탄생하면서 반미와 반탁을 지지하며 좌익화된 지리산 빨치산은 반드시 척결해야 하는 악의 상징이 되었다. 또 지리산에서 빨치산의 습격으로 미 군사 고문관이 사망하고, 거창군 신원면이 2개월 동안 빨치산 해방구가 되는 등의 정치·사회적 요인이 발생하면서 지리산 빨치산 토벌을 목표로 육군 11사단이 창설되었다. 3장에서 산청군과 함양군에서 있었던 민간인 학살 명령서의 조작 가능성, 학살의 과정과 정도를 살펴보았다. 산청과 함양의 민간인 학살은 육군 제11사단 제9연대의 지리산 공비토벌 4기 작전 중에 있었다. 민간인을 학살한 결정적인 계기는 당시 작전명령 부록 1항이었으나 현재 확인되는 작전명령서와 부록은 조작된 것이라는 진술이 있다. 그리고 학살 당시 지휘관들은 북한군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자대에서 낙오되어 빨치산에 대한 적개심이 불타고 있었으며, 군인들이 술에 취해 있었다는 증언을 찾았다. 무리한 작전명령에 만취한 3대대 부대원들의 일탈 행동이 더해져 참혹한 학살이 자행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또 지금까지 ‘堅壁淸野’로 학계에서 알고 있는 작전명이 ‘建壁淸野’였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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