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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영심 (한국외국어대학교)
저널정보
백제학회 백제학보 백제학보 제48호
발행연도
2024.5
수록면
265 - 301 (37page)
DOI
10.23269/jbs.2024..48.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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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화지산 유적에 대한 그동안의 발굴성과를 문헌 기록과 접목시켜 유적의 성격을 규명해보고자 했다. 14차에 걸친 발굴 조사를 통해 대대적인 대지조성 작업과 19기의 초석건물지, 굴립주건물지, 팔각 우물, 氷庫, 중국제 백자 벼루와 도자기 등 중요한 유구와 유물이 확인되었지만, 아직 조사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다. 따라서 본고는 현 단계의 중간 정리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화지산 유적은 6세기 후엽부터 7세기 초, 7세기 전・중반의 두 단계에 걸쳐 사비도성 정비 및 개발 공사의 일환으로 조성되었다. 국가적 차원에서 조성된 공적 시설인 화지산 유적의 성격을 사비시기의 離宮과 외교사신 영접시설[客館]이라는 차원에서 그 가능성을 타진해보았다. 아울러 화지산 유적이 조성된 시기에 익산 지역이 개발되고 왕궁리 유적과도 유사한 면이 있어 익산 지역과의 관계도 고려되어야 함을 언급했다. 무왕대의 宮南池, 大王浦, 望海樓, 望海亭 기사를 종합하면, 궁남지는 궁에 딸린 苑池이고, 망해루와 망해정도 왕과 관련된 시설이다. 궁성 바깥의 園囿 시설에서 군신들과 연회를 즐기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으므로 화지산 유적은 이궁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한 대외 교류와 외교를 중시한 백제에서 화지산 유적이 외교사절 영접시설로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위덕왕대 및 무왕대에는 대중국 외교관계가 더욱 빈번해지고, 離宮이나 別宮이 외교적 용도로 사용되는 사례가 자주 보이므로 이궁으로 조성하거나 계획했다가 客館으로 전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외교사절이 백제 국왕을 알현하기 전에 머물렀던 도성의 중앙 객관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궁설과 객관설 모두 난방 및 취사시설이나 차단 시설이 발견되지 않는 점은 취약점이다. 현재 두 단계로 구분되는 화지산유적의 개발 시기가 좀 더 구체화된다면, 유적의 성격 내지 기능의 변화 양상도 추출해낼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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