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의 사회파 미스터리 작품에 나타나는 ‘잃어버린 10년(失われた10年)’의 양상을 규명한 것이다. 본 논문에서 ‘잃어버린 10년’에 주목한 것은 버블 붕괴 후 장기 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이 시기에 미야베의 작품들이 당면한 사회 문제를 사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또한 이를 통해 당시를 살아가던 이들에게 과도기적 혼란을 극복하고 현실을 직시함에 있어 도움이 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문학계에서는 미스터리라는 장르가 ‘오락용 문학’으로 치부되어 문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야베의 작품 또한 버블경제 이후의 현대 일본사회를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구체상에 대한 학술적 접근이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미야베가 가장 활발히 활동했던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소위 ‘잃어버린 10년’간 발표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작품 속에 드러난 시대상과 메시지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본 논문에서 다루는 작품은 『화차』와 『이유』, 그리고『모방범』이다. 이들은 미야베의 작품 세계에서 ‘잃어버린 10년’을 대표하는 작품들로서, 그녀를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모’로 자리매김하게 한 작품들이다. 그리고 각각의 작품이 다루고 있는 소재와 주제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시기의 사회상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상과 메시지를 고찰하는 데 적합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제1장에서는 버블 붕괴 이후 흔들리는 도시 공간 ‘도쿄’의 양상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서, 또한 일본 국내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화려하게 주목받았던 도시 도쿄의 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얼굴을 조명하였다. 이를 통해 ‘도시형 사회’의 다양한 모순들에 주목하여 이 시기 각종 사회문제의 배경적 원인으로 작용한 도시 공간 도쿄를 분석하였다. 『화차』에서는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본 작품이 제시하고 있는 도시 공간 도쿄의 세 가지 속성을 규명해 보았다. 먼저 ‘새로운 나’를 좇아 도쿄로 향한 젊은이들이 감당하지 못할 빚을 지고 불행한 결말을 맞이하는 모습을 통해 ‘진정한 나’를 잃은 ‘유령들의 도시’로서 도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중채무 등의 이유로 도망자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이들에게 도쿄라는 거대 도시가 제공하는 ‘익명성’이라는 혜택에 주목하여 ‘도망자들의 도시’ 도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경제 발전이라는 대의를 위해 삶의 터전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도쿄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겪는 정체성의 위기를 통해, 진정한 고향을 잃은 ‘“뿌리 없는 자”들의 도시’로서의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유』에서는 사건의 배경인 도쿄가 지니는 ‘대형 도시’로서의 모습과 ‘소형 도시’로서의 모습을 살펴보고, 이질적 특성을 지닌 두 공간의 혼재 양상에 대해 고찰하였다. 작품 속에서 ‘대형 도시’를 상징하는 초고층 맨션 주민들이 보여 주는 우월의식과 타인에 대한 배타적 태도는 ‘일가족 4인 살해 사건’이라는 비극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소형 도시’를 상징하는 시타마치 주민들의 소시민적 삶의 모습은 다양한 관계와 갈등으로 북적이는 일상 속에서 단단히 쌓아 올려진 ‘소형 도시 도쿄’의 저력을 보여 주고 있다. 작품은 단순히 두 세계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이들이 모호한 경계 속에 혼재하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대형 도시’ 도쿄를 무대로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과도기적 혼란 속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소형 도시’ 도쿄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 치유의 힘을 시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방범』에서는 연쇄 여성 유괴 살해 사건의 범인들이 잔혹한 살인극의 무대로 선택한 도시 도쿄가 지닌 범죄 도시적 요소에 대해 분석해 보았다. 먼저 정보의 전달과 이익의 창출이라는 상반된 목적을 동시에 지닌 미디어의 특성이 범죄의 도구로 이용되었을 때 초래할 수 있는 폐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불행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발생한 고독감을 해소하기 위해 불특정 다수와 비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는 고독한 여성들이 무방비하게 범죄에 노출되는 양상을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대도시 도쿄를 무대로 연쇄 살인극을 벌이며 자신의 생육환경인 시타마치를 향해 악의를 드러내는 히로미의 분열된 내면의 모순을 분석하여, 범죄의 근간을 흔드는 공간으로서의 도쿄의 양상을 조명하였다. 제2장에서는 버블 붕괴 이후의 혼란 속에 나타난 각종 사회문제와 이로 인해 흔들리는 인간 군상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버블 붕괴가 초래한 사회 경제적 변화의 파급효과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이는 일반 서민들의 기본적 생활 기반까지도 뒤흔들어 놓았는데,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개인에게 부여한 “불공평한 운명”이 초래한 ‘고독’으로 인해 무너지는 인간성의 문제를 분석해 보았다. 『화차』에서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중채무, 일가이산, 가족의 사망, 고향의 상실 등 “불공평한 운명”을 짊어진 등장인물들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운명이 초래한 근원적 고독을 인식하고, 자신과 비슷한 운명을 지닌 타자에 대한 이해와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 가지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아가 이러한 시도가 자기 자신의 고독을 치유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의 발견으로 이어진다는 프로세스에 대해 분석하였다. 『이유』에서는 버블 붕괴 이후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가장들의 모습을 통해 이 시기의 부조리한 사회상을 고찰해 보았다. 작품 속에는 불법이나 편법을 사회를 움직이는 ‘특별한 힘’이라 믿는 가장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세우고자 버티기꾼, 경매물건 등의 방법을 이용하여 집을 소유하려 하지만, 결국 가족에게 버림받거나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되어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작품은 이러한 가장들의 모습을 통해 버블 붕괴 이후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올바른 현실 인식의 중요성을 피력하고 있다. 『모방범』에서는 연쇄 여성 유괴 살해 사건의 시발점이 된 장소인 유령빌딩을 통해 버블이 휩쓸고 지나간 폐허가 상징하는 것들에 대해 고찰하였다. 그리고 학대와 고통으로 얼룩진 피스와 히로미의 불행한 가족사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러한 운명이 초래한 고독의 정서가 ‘잃어버린 10년’을 살아가던 당시 일본인들의 정서와 닮아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아가 마지막까지 이들의 범죄 행각을 저지하고자 노력했던 가즈아키의 모습을 통해 타인을 향한 이해와 포용의 자세가 지닌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제3장에서는 작품에 나타나는 가족의 붕괴 양상과 현대 사회의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등장한 개념인 ‘유사가족’이라는 공동체의 형태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근대적 가족 형태의 붕괴가 현대 사회의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사가족 이라는 설정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아가 ‘소년’으로 상징되는 유사가족 속 다음 세대의 모습을 통해 작품이 궁극적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바를 규명하였다. 『화차』에서는 다양한 이유로 가족의 붕괴를 경험하고, 이로 인한 결핍을 안고 살아가던 이들이 모여 형성한 유사 가족적 집단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가족의 구성원들은 단순히 서로의 결핍을 채우는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을 담담히 살아가면서도 적재적소에서 서로에게 조력자로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러한 양상을 통해 유사가족이라는 형태의 인간관계가 지닌 가능성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이유』에서는 비극적 가족사가 초래한 갈등이 원인이 되어 흔들리는 가족의 양상을 보여 준다. 특히 부모에 의한 학대, 가족의 무관심으로 인해 제대로 된 가족을 이루지 못한 어른들이 모여 형성한 유사가족의 모습과, 이들이 맞이한 처참한 운명은 가족의 붕괴라는 현대사회의 일면을 새로운 각도에서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의 미래에 의문을 던지는 어린 소년을 등장시킴으로서, 우리 사회의 미래가 단지 비극으로만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방범』에서는 미야베 작품의 주요 모티브 중 하나인 ‘사건에 연루된 소년과 유사가족’이라는 구조를 통해, 구성원 상호간의 성장을 도와주는 유사가족의 모습을 고찰해 보았다. 타인과의 바람직한 관계 맺기를 통해, 개인의 변화와 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공동체로서 유사가족이라는 형태의 가능성에 대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본 작품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처럼 미야베의 작품에는 혼란과 상실의 시대인 ‘잃어버린 10년’의 양상이 잘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버블 붕괴가 야기한 각종 사회 문제들이 발생하는 배경으로서 ‘도쿄’라는 도시공간의 문제, 사회의 혼란 속에서 개인에게 주어진 “불공평한 운명”이 초래한 고독과 그로 인해 흔들리는 현대인의 인간성 상실의 문제, 그리고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가족의 붕괴와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 ‘유사가족’까지, 실로 다양한 소재가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재를 통해 작가 미야베가 그려내고자 한 ‘잃어버린 10년’의 양상 속에는 언제나 ‘인간의 문제’, ‘삶의 문제’, 그리고 결국에는 ‘문제의 극복과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미야베가 이 시기의 왕성한 작품 활동을 통해 ‘잃어버린 10년’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과도기적 혼란을 극복하고 현실을 직시함에 있어 도움이 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아가 ‘잃어버린 10년’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도 그녀의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는 의미 있게 다가갈 것이다. 본 연구는 그간 미스터리라는 장르적 한계로 인해 문학적 연구의 대상에서 벗어나는 경향을 보인 미야베의 작품에 대해,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키워드를 통한 다각적인 분석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가 될 것이다. 나아가 현대 사회의 일면을 이해할 수 있는 연구 대상으로서 미야베 작품의 재발견이라는 점에서 미야베의 사회파 미스터리 작품 연구의 외연을 넓힐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