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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정주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73輯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285 - 316 (32page)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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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고종의 親父로 고종을 대신하여 1864년부터 1873년까지 조선을 통치하였고, 1882년 임오군란과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일시 집권하였던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불교 후원 양상과 그 정치적 의미를 살핀 것이다. 흥선대원군은 집권 이전부터 용궁사를 중창하여 원찰로 삼았고, 고종이 즉위하자 그 보답으로 보덕사를 크게 세운 인물이다. 또한 쇠퇴했던 흥천사, 화계사, 보광사를 중창하였고, 鐘이나 불화를 시주하거나 편액과 주련을 써서 제공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불교를 후원하였다.
그는 만동묘와 서원을 철폐하고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 박해를 하였지만, 유독 불교에 대해서만은 호의적인 입장을 시종 견지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일상 소지 물품이 그려져 있는 2점의 초상화에는 모두 염주가 그려져 있다. 또 그가 사용했던 인장 가운데는 “불교를 즐겨 좇았다”거나 “술이 있으면 신선을 배우고, 술이 없으면 부처를 배우리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대원군은 일상에서 항상 불교를 가까이 했던 것이다.
흥선대원군은 개인적으로 불교에 호감을 가진데 그치지 않고, 불교를 정치적으로도 이용하였다. 흥선대원군의 불교 후원은 몇 가지 주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사찰을 창건하거나 중창할 경우 직접 改名하고 賜額하여 해당 사찰의 권위와 위상을 높여주었다. 둘째, 사찰을 중창할 경우 반드시 복을 비는 염불을 위한 大房을 만들어서 불교 신자들의 결집을 도모하였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조성된 대방을 중심으로 大王大妃 趙氏와 王大妃 洪氏 및 다수의 尙宮과 같이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여성 불자와 돈독한 유대관계를 형성하였고, 이를 통해 빈약한 정치적 입지를 극복하고 아들 고종의 즉위라는 필생의 염원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1854년 흥선대원군의 용궁사 중건
Ⅲ. 집권 이후 흥선대원군의 사찰 중창과 편액ㆍ주련 하사
Ⅳ. 흥선대원군의 불교 후원과 그 특징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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