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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효승 (동북아역사재단)
저널정보
역사실학회 역사와실학 歷史와實學 第73輯
발행연도
2020.11
수록면
297 - 328 (32page)
DOI
10.31335/HPTS.2020.11.73.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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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그 특성상 사실 유무를 구분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편적인 정보를 기반으로 무장 투쟁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독립운동사의 현장성을 담보할 수 있다. 다만, 전장소음으로 그 가치와 관계없이 일부 제외되거나, 소략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여기서는 그러한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청산리 대첩의 경우 독립군의 경우 북로군정서 등을 중심으로 서술되었고, 일본군의 경우 조선군 특히 히가시 지대를 중심으로 서술되었다. 하지만 당시 전투현장에는 그 외에도 많은 독립군이 있었고, 관동군에서 파견한 북만주 파견군 역시 작전을 수행하였다.
당시 청산리와 멀리 떨어진 소수분자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독립군이 일본군 정찰대를 전멸시키고, 이에 일본군은 수색부대를 편성하여 작전에 투입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당시 중국 신문 기사에서 단편 기사로 간략히 소개되거나, 『간도출병사(間島出兵史)』(1926)에서 매우 소략되었고, 우리 무장 독립운동사에서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측면에서 절반의 작전이라고 이름하였다.
여기서는 이러한 문제를 전장잡음에 의한 간섭으로 보고, 그 결정적 이유가 기존 연구가 작전 투입 단계에서 조선군의 주력 부대를 히가시 지대로 평가한 결과라고 생각하여, 중국 신문 기사에서 간략히 소개된 기사를 중심으로 당시 독립군의 상황을 재조명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일본군이 어떻게 군사력을 소모하였고, 결국 소모전으로 이어지게 되었는지 살펴보았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청산리, 절반의 작전계획
Ⅲ. 중국 신문기사 속의 일본군 찾기
Ⅳ. 관동군의 안서지대(安西支隊) 편성과 작전 활동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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