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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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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82호
발행연도
2006.6
수록면
81 - 119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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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17세기 말 - 18세기 초에 전라도 함평지방에 살았던 양반이준의 삶을 『도재일기』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준은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지만 급제하지 못하였다. 이준은 경제력이 넉넉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왜냐하면 기근을 피할 수 없어 정부가 지급한 구휼미를 받으러 종을 보냈으나 그가 도망가는 일을 겪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비들을 소유했으나 노비들의 도망이 속출했으므로, 이준이 직접 찾거나 관에 의뢰하여 찾기도 하였다. 기근에 이어 찾아온 전염병과 질병으로 인한 가족과 친지의 사망이 잇달았다. 이러한 이준의 삶은 17세기-18세기 사회의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준은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종교적 행위를 하였다. 가족의 병 등 불안한 일이 발생했을 때 『周易』에 근거해 괘를 뽑던 사람들에게 점을 치거나 자신이 점괘를 뽑기도 했다. 또 천연두에 걸린 형과 어머니가 생사의 기로에 서 있을 때에는 神의 도움을 빌기 위해 산 밑의 沼에가서 음식을 차려놓고 기도하였다. 이는 성리학적 세계관을 가진 이준이 할 수 있던 최선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도재일기』에 의하면 이준의 가문에서는 喪禮와 祭禮에서 성리학적 家禮 외에도 불교에 의존하였다. 승려들이 상례에 참여하고 있고, 齋室에 승려들이 머물며 佛供을 거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사후세계에 대한 불교적 세계관이 성리학을 공부하던 양반들에게 여전히 받아들여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그는 관상과 풍수를 말하는 무당은 말세에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사람으로 평가하면서도, 장례를 치르기 위해 점을 치는 사람에게 가 택일을 하고 지관을 데리고 가 산소를 고르는 일을 하였다. 이로 미루어 보면, 유학과 결합한 풍수지리설은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목차

요약
Ⅰ. 머리말
Ⅱ. 과거 응시와 경제력
Ⅲ. 질병과 죽음의 고통
Ⅳ. 고통의 초월: 신앙생활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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