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일본의 지방 소도시인 이시오카를 사례로 하여 향토상, 향토의식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형성, 발전, 기능하는지, 그리고 그 함축적인 의미는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에 대해 검토한다. 일본의 향토 연구는 역사학, 인류학, 민속학 등에 의해 주로 이루어져 왔으나 그 고찰대상, 관점 등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인다. 특히 '향토연구'로서 성립, 발전한 일본 민속학의 경우, 향토'에서' 민속학 조사를 실시하고 고찰하였던 것이며, 향토'를' 민속학적으로 조사, 고찰하는 일은 거의 전무에 가까웠다. 즉, 향토가 주로 '소여의 본질적 실체'로서 다루어져 왔다는 데 그 중요한 특징이 있다. 그러나 이글은 향토란 향토의식의 함양 등을 통해서 '의식적으로 구축될 수 있는 상상적 공간'이라는 점을 주장하고자 한다. 그리고 향토의식을 고양시키고 향토상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활동과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수 있음을 제기한다. 상기의 주장을 검증하기 위하여 이 글에서는 이시오카 향토사가들의 모임인 '이시오카 사적보존회'(이하, '사적보존회')의 신념과 주장, 활동들에 주목하였다. 전국적인 레벨에서 향토의 발견과 향토의식의 고취가 본격화된 1930년대 전후에 발족한 사적보존회는 활동의 일시적인 중단은 있었으나 1976년까지 그 활동을 지속하였다. 이글에서는 모임의 일시중지를 기점으로 하여 활동시기를 전기와 후기, 두 시기로 구분하여 그 이념적 특징과 활동 내용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 검토 작업을 통하여 모임 초기에 이른바 '실지조사,' '답사회'가 중점적으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러한 '조사-발견-보존' 활동이 지역의 다양한 생활문화나 역사적인 유적, 사적 등의 이른바 전통문화를 나열적으로 조사, 발견,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목적의식 하에 설정된 기준에 근거하여 한정적으로 구분, 고정화하는 작업이었음이 드러난다. 즉, 역사적으로 고증하기조차 어려운 고대 국부의 설치를 통해서 정치, 문화의 중심지로서 번영하였을 고대 이시오카를 현재 이시오카로 상상,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비연속적이고 단편적인 역사인식은 현존하는 역사적 편린의 발견을 통해 구체화되었으며 강조되었다. 현재 이시오카는 "고도(古都) 1300년의 역사와 향(鄕)의 문화와 만날 수 있는 고장"이라는 표어에 단적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오랜 역사와 문화'의 고장으로서 표상되고 있다. 이러한 표상의 구축에 상기한 사적보존회의 이념, 활동 등이 크게 영향을 끼쳤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향토상과 향토의식의 배경으로 사적보존회가 결성된 1930년대를 전후로 하여 급격히 진행된 일본의 사회변동, 특히 도시와 지방의 현격한 이분화 현상 및 지방 사회의 위상 변화를 상정하였다. 그러나 역사학, 사회학 등과 같이 사회제도적 검토가 아닌,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의 사회인식과 해석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였다. 이시오카의 경우, 에도 시대 이후의 상업도시, 경제적으로 윤택한 지역으로서의 위상이 1900년대 이후 점차 흔들리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당시 일본의 사회변동은 이시오카 사람들에게 "빈약한 자기 이미지"의 혼란을 경험하게 하였으며, 이것이 특히 사적보존회라고 하는 향토사가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향토상을 모색하게 한 동기로 작용하였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들은 이미지화된 역사적 단편과 그를 뒷받침하는 사적, 전승문화의 발견, 보존 활동을 통해 '이시오카'라고 하는 구성된 향토에 대한 특별한 애착과 표상을 형성, 발전시켰으며, 이것은 현재까지도 매우 유효한 상징적 담론을 구성하고 있다.
This paper deals with a Ishioka Town Heritage Association(ITHA) in Ishioka city, which is located in the middle of Ibaraki prefecture. Ishioka city represents itself to be 'a town where is able to experience a great history of 1300 years and culture of ancient township,' which can be seen on its homepage too.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demonstrate when and why this image of Ishioka which emphasizes its long history and old culture was established and who was inextricably involved in this process. ITHA which was founded by the local intellectuals in 1933 began to explore their hometown to find local traditional culture and heritage and to publish some magazines and books as the results of their activities. They discovered local heritage by passionate fieldwork, but some not all. The hometown Ishioka as an ideal and desirable entity had to be related to the center of ancient local government where was located in Ishioka region roughly 1300 years ago. Therefore ITHA members had to find some local heritage which could prove the authenticity of their image and arguments of hometown as a center. Why did they need to imagine and claim it? It is necessary to make sense of the context of the time in Japan to bring the answer into daylight. Ishioka town had been developed as a center of regional business and had prospered economically by a local brewing industry until the 1930s. However this status and reputation as a rich business town began to be questioned since the local industry including a brewing one had been failed to be reformed to get accustomed to massive social change, which might harm pride of the natives and get them to find an alternative reason for why their hometown was special and they chose to live there. ITHA was a key group in this process and appear to have been successful in providing an alternative hometown image and constructing a new local ident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