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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연구소 미술사논단 美術史論壇 第25號
발행연도
2007.12
수록면
37 - 65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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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묘수의 뿔과 날개는 漢代에 정형화되어 이후 줄곧 변함없이 진묘수의 상징이 되었다. 진묘수의 뿔은 死者를 수호하고, 날개는 승선을 돕는데 사용된다. 다시 말하면 진묘수는 이름 그대로 '鎭墓'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묘수가 자신의 날개를 이용하여 死者를 태우고 결국 '不死의 세계로 昇仙'시켜주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그렇다면 고분출토의 이들 동물상들을 여전히 '진묘수'라고 일컫는 것이 과연 옳은가 생각하게 한다. 물론 이 글에서도 편의상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진묘수'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하지만 실제로 이들 동물상이 양 어깨에 날개를 달고 死者의 승선을 최종의 목표로 삼고 있는 한 '진묘수'라는 명칭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뿔과 날개로 상징화된 한대 진묘수는 지역마다 본뜬 동물의 이미지가 달랐다. 감숙성 일대에서는 주로 말의 형상을, 섬서성과 하남성 일대에는 호랑이 모양을 본뜬 것이 많았다. 이후 일관성 없이 여러 가지 동물의 모양을 본떠 진묘수를 만들다가 대략 500년을 기준으로 진묘수는 일정한 패턴을 갖추게 된다. 즉 人面과 獸面이 한 쌍을 이루며, 그 중 인면은 입을 다물고, 수면은 입을 열고 있다. 또 모두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주저앉아 있으며, 기본형은 사자를 본떠 만들었다. 이처럼 기본형이 사자인 것도, 입을 벌린 阿形과 입을 다문 ?形이 한 쌍을 이룬 것도, 또 주저앉아 있는 자세로 만든 것도 모두 같은 시기 불교의 사자상을 본뜬 것이다. 실제로 500년 이후 북위 후기의 고분에는 불교의 영향이 적지 않다. 불교 사자의 영향을 받은 진묘수뿐만 아니라 불교의 사천왕상과 똑같이 생긴 진묘무사용도 마찬가지이다. 고분미술에 불교미술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예들은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다, 예를 들면 국립경주박물관 소장의 서악 능묘 문비에 새겨진 금강역사상이라든지, 금강역사의 모습을 본뜬 괘릉의 석인상, 불교의 사자상과 동일한 모습의 능묘 앞 사자상 등이 있다.
불교의 영향 아래 일정한 패턴을 지니게 된 북위 후기의 진묘수는 수ㆍ당대로 그대로 이어진다. 여전히 머리 위에는 뿔이 솟고어깨에는 날개가 표현되어 있으며, 인면과 수면이 한 쌍을 이루며, 앞다리를 세우고 엉덩이를 바닥에 붙인 채 주저앉아 있다. 하지만 당대의 진묘수는 북위 후기와 기본형은 분명 같지만 생김새는 많이 달라진다. 특히 8세기 이후에는 험악한 모습이 극에 달해 괴이하기까지 하다. 화려함이 극에 달했던 성당기의 진묘수는 8세기를 정점으로 그 이후에는 기능을 상실하고 무덤 속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만다.

목차

Ⅰ. 머리말
Ⅱ. ‘鎭墓獸‘의 개념과 뿔, 날개의 상징성
Ⅲ. 불교조각의 獅子와 결합된 北魏 後期의 진묘수
Ⅳ. 수ㆍ당대 진묘수로의 이행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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