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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목차

‘장황(粧潢, 粧?, 裝潢, 裝?, mounting)’은 물리적으로 약한 재료로 표현되고 구성되는 書畵를 보호하고 지지하는 실용적 역할과 書畵의 외형을 장식하여 藝術性과 畵格을 높여주고자 하는 목적으로 작품을 꾸미는 형식, 형태, 기술 등을 총칭하는 용어이다.<BR> 근래에는 미술사학이나 문화재보존학 등의 분야에서 이러한 장황에 대한 자료와 연구가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여러 역사적인 상황에 의해 전통적인 장황문화 자체가 단절되어 용어, 형식, 기술, 재료, 현전 자료의 확보 등에 있어 연구 성과가 매우 미비한 실정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기초연구의 일환으로 조선시대 문헌기록에 나타난 장황 관련 내용에 대해 살펴보았다.<BR> 먼저 장황이라는 용어의 한자표기가 중국이나 일본과 차이가 있다는 것에 주목하여 조선시대 문헌 기록을 검토한 결과, 주로 粧潢, 粧?, 裝潢, 裝? 등으로 표기되며, ‘장’字의 경우 ‘裝’보다는 ‘粧’의 표기가 많았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대부분 ‘裝’으로 표기하고 있는 것과 다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황’字의 경우는 실사변과 물수변의 황자를 혼용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현재 확인 가능한 기록들을 통해 용어들의 사용을 통계적으로 보면 족자, 병풍, 서책 등의 장황에 대해서는 특별한 구분 없이 네가지 표기를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었으며, 기록된 횟수로는 ‘粧?’으로 표기한 경우가 많았다.<BR> 이밖에 장황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 용어로는 褙貼, 繪粧, 回粧, 粧褙 등이 있다. 이러한 용어는 장인들의 호칭에도 그대로 응용되어 어미에 ‘匠’이나 ‘人’을 붙여 ‘褙貼匠’, ‘繪粧匠’, ‘繪粧人’, ‘粧潢人’, ‘粧?人’, ‘回粧匠’ 등으로 칭하였다. 배첩장의 경우 조선초기부터 계속 사용된 호칭이지만 18세기 중기 이후의 문헌에서는 확인이 어려웠으며, 호칭의 뒤에 붙는 어미인 ‘~匠’ 역시 18세기 이후로는 주로 ‘~人’으로 기록되고 있다.<BR> ‘上繪粧’, ‘下繪粧’, ‘邊’ 등 장황형식 중 족자나 병풍의 세부를 지칭하는 용어에 대한 것 역시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특징적인 용어들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BR> 이 외에 御眞의 模寫나 修補에 대한 儀軌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장황작업에 걸린 시일과 일정에 대한 것이다. 확인 결과 현재의 작업과정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교해 보면 매우 짧은 일정 안에 작업을 완료한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이는 어진의 크기, 건조시간, 작업환경 등을 고려하였을 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할 정도로 매우 빠르게 작업이 이루어 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관해서는 실제 작업의 단계나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세밀한 비교검토가 이루어져야 하며, 실제 조선시대 작품들을 복원해내고, 재현하는 과정을 통해 역추적하고 검증해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粧潢 #粧䌙 #裝潢 #裝䌙 #繪粧 #回粧 #書畵保存 #簇子 #屛風 #Janghwang #mounting #Hwejang #Korean painting and calligraphy conservation #restoration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조선시대 장황 관련 용어
Ⅲ. 조선시대 장황 관련 기록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학술저널]

조선시대 장황 용어와 관련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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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장황 용어와 관련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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