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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황현정 (한국교원대학교)
저널정보
역사문화학회 지방사와 지방문화 지방사와 지방문화 제13권 제2호
발행연도
2010.11
수록면
201 - 238 (38page)
DOI
10.17068/lhc.2010.11.13.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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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불교는 지속적인 억불정책으로 인해 그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열악해져 가고 있었다. 이 시기에 사찰의 사세를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찰의 건물은 낡아가고 있어 중수가 필요하게 되었으며 외부 후원을 끌어 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후원세력을 끌어 들이는 모습은 지역사회로 접근했을 때 한층 구체적으로 살펴 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안성지역에 소재한 청룡사의 후원자를 분석해 보려 한다. 사찰의 重修 기록과 佛畵 제작의 佛事 후원자를 살펴보면, 우선 사찰을 중수하는 기록에서는 왕실인 전주 이씨의 후원이 주목된다. 즉, 사찰의 위상이 높았던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로 들어서면 안성은 상품화폐 경제의 발달에 따라 장시가 활기를 띠는 지역적 특성을 지닌다. 이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신흥세력인 상인 및 수공업자, 그리고 장터에서 활약을 펼치는 才人들이 시찰 중수에 적극적인 후원자로 등장하고 있다. 지역의 사찰이 지역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변화 속에서 새로이 등장하는 民人과 관계를 맺으면서 사세를 유지해 가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었다.
불화 조성의 후원자는 구체적 직함과 이름, 불화의 도상 등을 후원양상과 함께 살펴 보았다. 여기서도 청룡사가 才人의 후원 끌어 들이는 모습이 찾아져, 당시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한 것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신흥세력을 후원자로 끌어 들이는 것을 한번 더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세기 여성의 시주, 인근 전통사찰과 관련을 맺고 있는 민씨 집안의 후원 등 흥미 있게 살펴 볼 수 있는 사실들이 다수 확인되었다. 그림을 그린 화사들도 당시 경기 남부 지역에서 활약하던 이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드러나 당시 청룡사의 불교계 내에서의 사세를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조선후기의 불교계는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民人의 후원으로 유지되었음을 일반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는데, 본 글은 이러한 사실을 논증해 주는 구체적 사례연구라고 할 수 있겠다.

목차

[초록]
1. 머리말
2. 청룡사의 연혁
3. 佛事를 통해서 본 청룡사의 후원자
4. 맺음말
〈부록〉
[참고문헌]

참고문헌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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