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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석근 (아산서원)
저널정보
한국양명학회 양명학 陽明學 제36호
발행연도
2013.12
수록면
371 - 398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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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공공성’ 개념을 시대적으로 근대 사회에 국한된 것으로 보는 입장에 대해서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자 한다. 개인과 공동체 내지 전체 구성원들과 관련된 사안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종의 보다만 중요한 차이점은 시대에 따라서 그런 관계에 대한 설명 논리와 정당화 기제 같은 것이 서로 달랐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이같은 입장에서 출발하는 이 글에서는 고대 한국의 민주적 전통 속에 ‘공공성’이 어떻게 추구되고 구현되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고대국가’의 성립, 다시 말해서 강력한 왕권이 등장해서 이른바 전제왕권을 구축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삼아서 고대 국가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보고자 한다. 고대 국가 성립 이전에는 흔히 말하는 ‘연맹왕국’의 경우, 씨족 연합을 토대로 발전한 부족과 그 부족들 사이의 연맹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다. 국가의 성격상 부족연맹 내지 연맹왕국이라는 정치적 결합체였던 만큼,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는 연맹체의 대표자(부족장)들이 모여서[부족회의] 논의하고, 결정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하고자 하는 국면은 다음의 두 가지 측면, 즉 적극적인 차원과 소극적인 차원이라 할 수 있겠다. 적극적인 차원의 경우 ‘소통’과 ‘합의’를 통한 공공성의 구현이라는 측면이다. 구체적인 사례로는 신라와 가야의 건국신화, 화백제도(신라)나 남당(신라.백제), 정사암(백제), 제가평의회 (고구려) 등의 사례를 들 수 있겠다. 소극적인 차원의 경우, ‘독점’과 ‘배제’로 특징지워지는 폭군 및 독재정치-이는 ‘공공의 적’ 내지 ‘공공성에 대한 도전’이라 할 수도 있겠다-를 지양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는 왕의 교체와 살해 그리고 민의 참여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같은 작업을 통해서 한국 고대사에서 공공성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음과 동시에 거시적인 맥락에서 공공성이 시대별로 어떻게 변화해왔는지에 대한 토론 자료 제공이라는 측면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나아가서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과 공동체 혹은 국가와의 관계 여하와 관련된 실천적 관심, 그리고 공공성을 제고하고 강화해가는 과제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언제 어디서나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살아가면서 공공성을 완전히 외면하거나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목차

요약문
I. 머리말
II. ‘고대 국가’ 성립 이전과 이후
III. ‘소통’과 ‘합의’에 의한 구현
IV. ‘독점’과 ‘배제’의 지양(止揚)
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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