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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동락 (대가야박물관)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22호
발행연도
2011.8
수록면
331 - 371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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實相山門은 소위 9山禪門 중 가장 먼저 개창된 禪宗山門이다. 그 開創祖인 洪涉은 道義와 함께 선정 初傳僧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 글은 홍척선사가 신라하대 선종의 전래라는 시대적 과제에 어떻게 대응하였는가를 살펴본 것이다.
홍척은 대략 770년대 초반에 출생하여 840년경에 입적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826년(흥덕왕 1)경에 귀국하여 南岳의 實相寺에 주석했다. 이후 830년(흥덕왕 5)경 흥덕왕과 宣康태자(金忠恭)의 초빙으로 왕실에 방문하여 說法하였고, 흥덕왕은 그를 國師로 책봉했던 듯하다. 홍척은 흥덕왕에게 자신이 전해온 선종의 내용과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조언하였다.
흥덕왕이 홍척에게 귀의하고 南宗禪을 받아들인 배경은 金憲昌의 난(822년)으로 촉발된 지방사회으 혼란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정치개혁의 사상적 뒷받침을 위해 홍척이 전해온 선종을 주목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당시 불교계의 일신을 위해 선종사상과 교단의 운영방식에 공감했던 듯하다.
한편, 홍척은 선종의 수용을 위해서는 신라왕실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왕실을 통해 선종을 확산시키고자 했으며, 흥덕왕의 개혁정치에도 협조하였다. 아울러 선종에 대한 기존 불교계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敎學을 포용하는 자세를 견지하였다. 특히, 대중교화를 위해 실상사에 鐵佛을 조성하는 등 방편을 채용하였다. 이는 자신보다 앞서 귀국한 도의를 통해 얻은 反面敎師의 교훈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입당유학과 귀국
Ⅲ. 남악에서의 실상산문 개창
Ⅳ. 흥덕왕의 남종선 수용과 홍척의 대응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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