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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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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불교학보 불교학보 제56집
발행연도
2010.12
수록면
165 - 191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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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과 비판의 상반되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호국전통은 한국불교의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경험으로서 존재한다. 이 같은 호국전통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중의 의승군 활동을 들 수 있으며, 그 중심적 인물로는 단연 사명대사 유정이 손꼽힌다. 전국 사찰에서 5천여명의 승려가 자원 참전했던 임진란 의승군의 구국활동에서 유정의 역할과 업적은 그 만큼 탁월하고 독보적인 것이었다. 그런 유정이 교단내에서는 어떻게 인식되고 평가 받았던 것일까. 유정은 의승군 도대장으로서 전국의 의승군 활동을 실질적으로 이끌었고, 네 차례나 왜군의 진영을 드나들며 적장과 담판 하였으며, 전쟁의 재발 방지를 위한 자주국방책 및 바른 정치와 시국 현안을 세 차례의 글을 통해 왕에게 건의하였다. 또 종전 후에는 조정의 명에 따라 강화사로서 일본에 건너가 외교의 임무까지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단순히 의승장으로서만이 아니라 탁월한 식견을 지닌 경세가로서의 면모가 돋보이기도 하는 유정의 이 같은 다양한 역할과 활동으로 인해 그는 참전 이후 무려 14년 여를 세속에 머물게 된다. 이미 개인의 의사대로만 행동하기 어려운 입장이 된 그로서는 부득이한 일이기도 했지만, 교단 내 일각에서는 이런 유정의 행적에 대해 비판적 시각도 없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수행자가 그 본분이 아닌 세속의 일에 너무 오랫동안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부 비판적 기류가 있기는 했지만 그러나 구국애민을 위한 유정의 큰 활동과 확연한 업적에 대해서 교단 내의 동문 및 선후배 승려들 대부분은 그것을 긍정적으로 또는 자랑스럽게 여긴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당시 철저하게 하락해있던 불교의 열악한 현실 조건 속에서도 유정과 같은 걸출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불교계가 국난극복에 참여하고 크게 기여할 수 있음을 자긍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조선의 의승군 활동은 상황적으로 구국애민을 위한 불가피한 현실참여였다. 그리고 그 활동의 결과로서 변형적이나마 불교와 국가와의 공적인 관계가 유지되고 그 위상 또한 어느정도 높아질 수 있었다. 이 같은 두 가지 측면에서도 유정의 존재와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따라서 유정의 구국활동은 일부 비판적 인식이 있었다 하더라도 전체적으로는 지지되고 높게 평가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유정의 지도력과 업적을 포함하여 조선시대 의승군 활동은 국가 사회와 교단에 끼친 지대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이를 불교의 본령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반드시 요구되는 현실참여였고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불교 외적 활동으로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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