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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성섭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51집
발행연도
2015.8
수록면
153 - 186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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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군 임천면은 일찍부터 수전농업이 발달한 평야지대로 금강을 끼고 상류로는 강경에 다다르고, 하류로 내려가면 군산항이 위치해 있다. 특히 임천면 가까이에 위치한 양화면 입포리는 금강에 위치한 포구로서 군산항까지의 미곡 운반도 유리하였다. 또한 입포리에는 미곡검사소도 이미 설치되어 있었다. 수리조합 사업이 미곡을 증산하고 증산된 미곡을 일본으로 반출을 위한 것이라고 했을 때 임천은 수리조합 설립의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임천에는 동척의 사유지가 있었으며 동척에서는 이를 토대로 지주경영을 하고 있었고 동척 외에는 임천수리조합 설립 관계 지역에는 이렇다 할 대지주가 존재하지 않았다. 대부분이 자작겸소작농이거나 소작농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리조합 설립으로 생산량이 증대된다 할지라도 그로 인한 이익을 향유할 만한 농가는 없었다. 유일하게 대지주로 군림하고 있던 동척만이 수리조합 사업의 이익을 볼 뿐이었다. 또한 일제의 개량품종이 보급되었고, 개량품종의 생산량 증대를 위한 수리시설의 개선이 필수적이었다.
1920년대 후반 임천수리조합 설립이 추진되었다. 동척의 이민사업으로 이주해 온 일본인 농민들은 수리조합 설립 논의가 있자 수리조합창립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수리사업에 앞장섰다. 이들은 동척의 대행자 성격으로 수리조합 설립을 주도하였고 설립 이후에는 동척이 평의원이 되면서 조합 운영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동척은 자작겸소작농이 수리조합 설립에 동의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임천수리조합 관계 지역의 자작겸소작농은 동척과 소작계약을 맺고 있었다 이들은 소작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동척이 추진하는 수리조합 설립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임천수리조합 평의회는 동척을 비롯한 일본인 대지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일본인 평의원들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토지 등급을 사정하였고 영세한 농민들에게는 과도한 조합비가 부과되었다. 고율의 조합비를 견디지 못한 한국 농민들은 토지를 매각하고 조합원 자격을 상실하였다. 한편 일본 농민들은 조합에서 이탈해 나가는 한국 농민들의 토지를 매입하여 새롭게 조합원으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조합 구역이 확장되면서 임천수리조합은 일본인이 증가하여 일본인 중심의 수리조합으로 변하였다. 결국 임천지역에서 수리사업이 실시되면서 동척을 비롯한 일본인 농장, 일본인 농민들의 비율이 증가하면서 농업 침탈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목차

1. 머리말
2. 임천의 사회·경제적 배경
3. 임천수리조합 설립과 반대운동
4. 수리조합 설립 이후 토지 소유권 변화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영문요약

참고문헌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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