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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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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학회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서양미술사학회 논문집 제4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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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1970년대 단색화의 정체성 논란은 일본 미술인의 ‘백색 미학’에 부응하여 1975년 일본 동경 화랑에서 열린 ≪한국·5인의 작가 다섯 가지의 흰색 韓國·五人の作家 五つのヒンセク<白>≫전을 계기로 단색화에 대한 미학적 담론이 형성되었다는 주장에서 비롯되었다. 본 논고에서는 2000년대 이래 학계에서 별다른 반론 없이 지속되어 온 이러한 시각이 타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했는지 두 가지 쟁점에 대한 실증적인 반증 사례를 제시하여 논의하고자 하였다. 첫 번째는 ≪5인 흰색≫전 이전에 국내 미술계에서 단색화에 대한 미학적 담론이 주체적으로 형성되고 있었는지의 여부이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단색화의 논리를 우리 미술계에 제시한 이일(李逸, 1932-1997)과 박서보(朴栖甫), 그리고 일부 미술사학자들에 의해 단색화 담론의 계기를 마련한 장본인으로 평가되고 있는 나카하라 유스케(中原佑介, 1931-2011)의 발언이 담긴 단색화 전시회 서문이나 미술 간행물, 신문기사 등의 기록물을 분석하였다. 두 번째는 단색화 경향이 조선의 미학을 일제강점기의 ‘비애의 미’로 규정한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 1889-1961)의 영향 아래 일본인에 의해 발굴되어 확산되었는지의 여부이다. 이 질문의 답은 ≪5인 흰색≫전이 열리기 전에 이미 국내에서 열린 5인의 ≪백색≫전, 국전에서의 흰색 그림의 유행 등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찾았다. 더불어 ‘단색화 미학’에 대한 일본 미술계의 시각을 살펴보기 위해서 ≪5인 흰색≫전의 서문, ≪한국현대미술의 단면≫(1977) 전의 서문, ≪한국현대미술의 단면≫전과 ≪한국현대미술의 위상≫(1982) 전의 좌담회 기록 등도 검토하였다. 이상의 연구과정을 통해 ≪5인 흰색≫전 이전에 이미 국내 화단에서 ‘흰색 그림의 유행’과 단색화의 ‘정체성 담론’이 주체적으로 형성되고 있었고, 단색화의 미학을 일본 평론가들이 야나기의 ‘비애의 미’로 간주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음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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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I(KEPA) : I410-ECN-0101-2017-609-001126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