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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구진경 (가천대학교)
저널정보
서양미술사학회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서양미술사학회 논문집 제45집
발행연도
2016.8
수록면
39 - 68 (30page)
DOI
10.16901/jawah.2016.08.45.039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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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단색화의 정체성 논란은 일본 미술인의 ‘백색 미학’에 부응하여 1975년 일본 동경 화랑에서 열린 ≪한국·5인의 작가 다섯 가지의 흰색 韓國·五人の作家 五つのヒンセク<白>≫전을 계기로 단색화에 대한 미학적 담론이 형성되었다는 주장에서 비롯되었다. 본 논고에서는 2000년대 이래 학계에서 별다른 반론 없이 지속되어 온 이러한 시각이 타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했는지 두 가지 쟁점에 대한 실증적인 반증 사례를 제시하여 논의하고자 하였다. 첫 번째는 ≪5인 흰색≫전 이전에 국내 미술계에서 단색화에 대한 미학적 담론이 주체적으로 형성되고 있었는지의 여부이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단색화의 논리를 우리 미술계에 제시한 이일(李逸, 1932-1997)과 박서보(朴栖甫), 그리고 일부 미술사학자들에 의해 단색화 담론의 계기를 마련한 장본인으로 평가되고 있는 나카하라 유스케(中原佑介, 1931-2011)의 발언이 담긴 단색화 전시회 서문이나 미술 간행물, 신문기사 등의 기록물을 분석하였다. 두 번째는 단색화 경향이 조선의 미학을 일제강점기의 ‘비애의 미’로 규정한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 1889-1961)의 영향 아래 일본인에 의해 발굴되어 확산되었는지의 여부이다. 이 질문의 답은 ≪5인 흰색≫전이 열리기 전에 이미 국내에서 열린 5인의 ≪백색≫전, 국전에서의 흰색 그림의 유행 등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찾았다. 더불어 ‘단색화 미학’에 대한 일본 미술계의 시각을 살펴보기 위해서 ≪5인 흰색≫전의 서문, ≪한국현대미술의 단면≫(1977) 전의 서문, ≪한국현대미술의 단면≫전과 ≪한국현대미술의 위상≫(1982) 전의 좌담회 기록 등도 검토하였다. 이상의 연구과정을 통해 ≪5인 흰색≫전 이전에 이미 국내 화단에서 ‘흰색 그림의 유행’과 단색화의 ‘정체성 담론’이 주체적으로 형성되고 있었고, 단색화의 미학을 일본 평론가들이 야나기의 ‘비애의 미’로 간주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음을 확인하였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정신성,’ 그리고 ‘물질성’
Ⅲ. ‘흰색’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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