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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재영 (창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시학회 한국시학연구 한국시학연구 제47호
발행연도
2016.8
수록면
345 - 370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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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신춘문예의 명칭 성립 과정과 그 기원에 대해 본격적으로 살펴본 것이다. 초기의 신춘문예는 그 정체성이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어 왔었고, 구체적인 제도가 정착된 것은 1925년 무렵이었다. 신춘문예는 그 명칭도 다양하게 변모되었는데, 연구의 범위를 정하기 위해서는 가정 먼저 그 정의가 필요했다. 본고에서는 ‘여러 부문의 문학 신인 선발을 목적으로 신문사에서 매년 행하는 문예행사’로 정의했다.
신춘문예의 출발점으로는 ‘각지기문(各地奇聞), 속요(俗謠), 소화(笑話), 시(詩), 단편소설(短篇小說), 서정서사(敍情敍事)’의 6개 부문에서 작품을 모집했던 1912년의 현상모집을 들 수 있다. 새해에 당선작을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신춘문예의 요건을 대부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인 선발제도로서 신춘문예 명칭이 최초로 사용된 것은 1919년 12월 2일의 『매일신보』 현상모집이었다. ‘신춘’이라는 용어는 새해라는 의미와 희망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새해부터 5월까지 사용되었다. 이후 1925년에『동아일보』가, 1927년에『조선일보』가 신춘문예 명칭을 사용하면서 신춘문예 용어는 보편화되었으며, 몇 번의 변화를 겪다가 점차 정립되었다.
우리나라의 신춘문예가 성립 초기에 일본 제도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이 있었으나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는 없었다. 일본에서는 1900년대 초기에 신문사 중심의 현상문예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1945년 이전에는 46개 신문사에서 신춘문예를 시행하고 있었다. 『매일신보』 가 신춘문예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내선일체를 강조하는 친일신문이었다는 점에서 일본 영향설은 설득력이 있다. 등단제도로서의 일본 신춘문예와 우리나라의 신춘문예를 비교분석하는 일이 과제로 남아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서론
Ⅱ. 신춘문예의 정의
Ⅲ. 명칭의 성립
Ⅲ. 신춘문예의 기원
Ⅳ.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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