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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李海林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 文化史學 第46號
발행연도
2016.12
수록면
61 - 83 (2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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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동 마애사존불상(향토유적 제13호)은 현재 경기 안성 일죽면 신흥리 선유동 산59-1, 선유마을 뒤편의 선유암 정산부에 위치한다. 마애불은 이동이 어렵고 본래의 조성위치를 벗어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조성 당시의 조각 양식이나 신앙, 지역성을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안성지역이 갖는 지리적 특수성과 역사성을 토대로 이곳의 많은 불교유적과 유물이 연구된 것과 달리 선유동 마애불상은 현상 소개에 그쳤을 뿐이다.
선유동 마애불상군의 양식은 전통양식을 계승하고 있으나 세부표현에 있어 도상의 변형과 생략된 모습이 두드러진다. U자형 층단형 옷주름의 간격이 매우 넓어지고 모양 또한 수평에 가까워지는 등 점차 단순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크고 화려한 용화지물이 작고 둥글게 표현되거나 팔을 접을 때 생기는 옷주름의 모양 역시 부채꼴에서 일자로 바뀌는데 이는 11세기에 조성된 불상을 시작으로 고려후기로 갈수록 점차 심화되고 있다. 선유동 마애불상군의 양식은 그 중간단계로 보이며 마애불의 조성은 적어도 12세기 이후로 판단된다.
마애불이 조성된 안성 일죽면 선유마을과 선유암의 명칭에서 유래한 선유동 마애불상의 존명과 마애불이 쥐고 있는 용화지물을 통해 미륵보살로 추정할 수 있으며, 『新增東國輿地勝覽』 竹山縣 기사를 통해 선유동 마애불상군이 있는 곳과 동일한 위치에 凝石寺라는 절이 있었음을 비정하였다. 응석사는 고려 명종이 잠저 시절에 머물렀던 곳으로 이곳 승려의 꿈에 고려 태조가 나타나 명종이 왕이 될 것을 암시하였다. 이는 다음 생애에 반드시 성불하는 선혜보살이 받은 수기에 상응하는 것으로 무신정권에 의해 왕으로 옹립된 명종이 즉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한다.
한편, 응석사 부근인 선유암의 마애불을 미륵불로 조성한 것은 12세기 사회 전반의 혼란 속에서 동요하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태조의 왕즉보살 사상을 계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려전기의 석조보살상을 포함한 선유동 마애불이 독존으로 조성된 것과 용화가지를 쥐고 있는 것 외에는 미륵보살로서의 특이점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고려초기의 불교신앙과 더불어 왕즉보살 사상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불신앙과 보살신앙의 경계가 모호해짐에 따라 나타난 결과로 볼 수 있다.

목차

요약
Ⅰ. 머리말
Ⅱ. 現況과 樣式特徵
Ⅲ. 造成背景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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