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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李海朱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 文化史學 第48號
발행연도
2017.12
수록면
5 - 30 (26page)
DOI
10.29334/MHSH.2017.12.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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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상은 7세기 무렵 석재로 조성되면서 규모가 등신대 이상으로 확대되는 전기가 마련돼 점차 한국적 특징을 발현시켜 나갔다. 이러한 전환기적 성격에 주목하여 이 글에서는 7세기 석불에 투영된 변화상과 다양성을 도출했다. Ⅱ장에서는 석불의 유형을 마애불과 원각상으로 나누어 각각의 특징을 검토했다. 먼저 마애불은 금동불 조형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장르로, 첫째, 암벽에 얕은 감실을 마련하고 불상 앞에 목조 전실을 세우거나 지붕을 덮는 등의 봉안형식이 나타나는데, 백제에 비해 신라의 경우가 형식면에서 다양하고 분포 지역도 폭넓다. 이러한 다양성이 석굴암 건립의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둘째, 수도나 교통로를 향하는 坐向에서 공동체를 위한 조불 성격이 추정된다. 셋째, 백제에서는 유례가 없는 삼존도상이 신라에서는 특이한 群像형식이 창안되었다. 전쟁의 참상 속에서 변화된 신앙이 새로운 도상으로 표출되었을 수 있는데, 群集의 경우 넓어진 바위 면에 되도록 여러 불 · 보살을 조각해 평온을 얻기 위한 의도일 수 있다. 다음으로 원각상은 첫째, 사찰 금당에 본존으로 봉안하기 위해서 조성됐기 때문에 불상과 전각의 규모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데, 대개 등신대 이상의 크기로 조각되어 당시 사찰 규모를 짐작케 한다. 이러한 대형 원각상의 위용과 존재감이 신도들에게 주는 위안은 소형 금동불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을 것이다. 둘째, 신라의 경우 등신대 석조 반가사유상이 조성되었다. 소형 금동불로 제작되던 반가사유상이 등신대 규모로 제작된 것은 이 시기에 조성되기 시작한 석조 원각상이 모티프로 작용했을 것이다. 대형 반가사유 원각상의 등장은 이 시기 열렬한 미륵신앙을 반증하는데, 그것이 유독 신라에서만 제작된 배경은 화랑과 국왕, 미륵과 석가모니 붓다의 유비관계가 신라의 정치적 역학관계가 맞아떨어진 데 있다. Ⅲ장에서는 광배와 불신, 그리고 대좌 양식의 특징을 살펴봤다. 광배 형식이 주로 두광이며, 형태가 보주형 · 원형인 데서 장차 주형거신광배로 발전되어 가는 초기 단계임을 알 수 있다. 석조 광배 조성으로 면적이 넓어진 결과 장엄 문양 중 화불이 증가했고 화염보주 형식이 정립되었다. 경주지방 석불의 경우 새로운 착의법이 보이는데, 그 배경에는 울산항을 통한 인도와의 교류 가능성이 있다. 수인과 발, 그리고 대좌형식은 모두 백제보다 신라의 마애불에 다양하게 나타나, 백제에서 시작된 석불조각이 신라에서 다양해진 측면이 확인된다. 마애불 표현이 다채로운 것은 원각상보다 넓은 바위 면을 이용할 수 있고 단축법과 같은 회화적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목차

요약
Ⅰ. 서론
Ⅱ. 유형별 특징
Ⅲ. 양식적 특징
Ⅳ.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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