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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형신 (남서울대학교)
저널정보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사상과 문화연구원 장신논단 장신논단 Vol.49 No.2
발행연도
2017.6
수록면
85 - 114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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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한국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일어난 로스역본 논쟁을 규명하기 위하여 문헌연구 방식으로 수행되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존 로스 선교사가 만주에서 번역한 한글 신약성서, 즉 로스역본의 보급 및 개정본 출판 여부를 놓고 한국내 미국 선교사들, 영국성서공회, 그리고 존 로스 등의 관련자들을 중심으로 대략 1887년부터 1893년에 걸쳐 로스역본 논쟁이 일어났다. 상임성서위원회는 1889년에 로스역본을 개정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완역 신약성서 개정본은 나오지 않았지만, 『누가복음젼』(1890), 『보라달로마인셔』(1890), 그리고 국한문 병용본인 『約翰福音傳 요한복음젼』을 출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동 위원회는 이듬해에 개정본 출판을 전격적으로 포기하고 새로운 번역을 시도하기로 결정하였다. 로스역본 논쟁 과정에서 장로교의 언더우드는 처음부터 새번역 출판을 주장한데 반하여, 감리교의 아펜젤러는 개정본 출판을 옹호하였고, 영국성서공회의 북중국 총무 브라이언트 역시 개정본 출판을 적극 지지하였다. 신약성서의 완역 개정본이 포기된 주된 이유는 주로 북부 지방과 서울 지방 정도까지만 소통될 수 있었던 로스역본의 지방어적 특성과 한문투의 표현들이었다. 로스는 초판 이후에 서울말을 채택하여 번역하려는 노력을 상당 부분 보여주었지만, 한국 선교사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주에 주재하는 로스의 한글 성서 번역에 대한 열정과 초대 한국 선교사 언더우드의 새 번역에 대한 강한 열정의 충돌, 그리고 여기에 가세한 브라이언트의 영국성서공회 입장에서의 경영 측면의 전략 문제가 이 논쟁에서 또한 중요한 영향력 있는 요인으로 파악된다. 결국, 이 논쟁은 한반도 전역에서 이해될 수 있는 성경 번역을 위해 표준 철자로서 서울말을 찾아가는 과정을 의미했다. 또한, 로스역본의 개정 활동을 통해서 성서 번역의 방법과 내용을 학습하는 기회를 부여했다. 나아가 한글 성서 번역의 주도 세력이 스코틀랜드 선교사로부터 내한 선교사로 이전되어, 결과적으로, 18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로스를 통한 스코틀랜드장로교회의 영향이 단절되고 미국 교회의 영향력이 지배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들어가는 말
Ⅱ. ‘로스역본’ 논쟁의 전개
Ⅲ. ‘로스역본’ 논쟁의 분석
Ⅳ. 나가는 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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