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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면 (서강대)
저널정보
역사문화학회 지방사와 지방문화 지방사와 지방문화 제21권 제1호
발행연도
2018.5
수록면
263 - 296 (34page)
DOI
10.17068/lhc.2018.05.21.1.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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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225년에 일어난 諸葛亮의 南蠻 정벌과 그것이 만들어 낸 ‘가짜’ 역사 및 유적과의 관련성에 대한 검토이다. 특히 ‘七縱七擒’의 무대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쪽으로 점차 확대되어 간 현상에 주목하였다. 기존 연구를 토대로 제갈량의 남정 노선과 雲南지역에 퍼져있는 제갈량 관련 전설 및 유적에 관하여 검토하였다. 아울러 운남 서부지역과 미얀마 지역으로 관련 전설이 확산되는 역사적 계기로서 南詔國의 존재를 지목하고, 그 관련 기록과 그 연결 지점들을 살펴보았다. 현재의 雲南 保山 지역은 3세기 중반 이후 14세기 후반 明王朝가 진출할 때까지 중국 국가의 행정적 힘이 직접적으로 닿지 못하였다. 그러나 9세기 초반의 기록은 이 지역에 제갈량의 이름을 붙인 城과 제갈량을 제사하는 사당이 존재했음을 전하고 있다. 이 잃어버린 고리를 이어주는 것이 남조국과 大理國의 역사이다. 남조국이 성립하기 이전 따리 지역에는 제갈량의 남정을 자신들의 ‘역사’의 일부로 활용하는 세력이 존재하였다.『張氏國史』로 대표되는 세력이었다. 『紀古滇說集』에 채록된 제갈량 남정 관련 기록의 원본은 이들에 의해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의 관할 지역에서 諸葛武侯城의 명칭을 사용하고, 그를 숭배하는 祠堂을 유지시킨 남조국의 지배 집단도 이러한 ‘역사’ 서술체계를 용인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남조국의 개창자는 張樂進求가 주재하는 ‘鐵柱祭祀’에 참여하였으며, 『기고전설집』은 장락진구가 그에게 ‘禪讓’했다고 적었다. 특히 8세기 후반 永昌(현 保山) 지역에 진출하여 개발을 시작한 南詔王室의 입장에서 남만 정벌에 성공한 ‘제갈량’의 역사적 권위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역사는 전설을 만들고, 전설은 다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한 셈이다.

목차

초록
1. 머리말
2.『삼국지』와 『삼국지연의』의 ‘남만 정벌’ 노선
3. ‘역사’의 기념과 창조: 운남의 제갈량 사적과 전설
4. 또 다른 기록들: 제갈량 전설과 ‘白國’, 그리고 南詔國
5.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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