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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추명엽 (서울대)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09집
발행연도
2018.12
수록면
109 - 145 (37page)
DOI
10.52271/PKHS.2018.12.109.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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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에서는 초기부터 다양한 이종족·이국인이 내조·내헌과 내투·내부의 방식을 통해 한시적 거주 내지 영구 거주하면서 고려 해동천하를 이루고 있었다. 고려 해동천하에서 탐라·발해 출신은 한인 출신과 같이 국가명을 출자로 표시하여 관리되었지만, 한인 출신과는 다르게 고려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한편 여진, 거란, 몽골 등 북방 출신은 그 종족명으로 출자를 표시하였지만 고려 정부에서 종족 단위로 파악하여 관리하였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여진 등은 지역적, 공간적 통제로 관리되었다. 그런 배경 속에 고려에서는 ‘族類’가 조선 전기와 달리 같은 친족의 사람이란 좁은 의미로 활용되었다. 종족과 유사한 용어인 ‘遺種’ ‘種類’도 그 의미를 특정하기 힘들게 활용되었고 송으로부터 들어와 정부에서도 알고 있었던 ‘種族’ 용어도 활용되지 않았다. 그와 같은 고려의 ‘종족’ 인식 위에서 고려의 자기의식도 점차 조정되어 갔다.
고려 초기부터 태조 왕건과 최승로로 대표되는 국왕과 신료의 사고 범주 중심에 ‘우리나라(我國)’가 있었고 ‘아국’으로의 집단귀속의식은 강조, 하공진 등으로 대표되는 ‘고려인’으로서의 강렬한 귀속의식이 잘 보여주고 있다. 이는 거란과 대립 속에서 발전된 지방인들의 집단귀속의식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그 위에 ‘我東方’ ‘我海東’ ‘我大邦’ ‘我日月’ ‘我乾坤’ 등으로 표현되는 해동천하로서의 집단귀속의식이 이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아일월’과 ‘아건곤’은 백성과 함께 하는 소천하로서의 면모를 가지고 있었고, 해동천하에서는 이종족도 ‘우리’로 포함되어 ‘我蕃軍’이 보고문에서 활용되었다. 이는 지리 공간을 중심축으로 하는 집단귀속의식으로서의 성격을 보여준다.
고려 중·후기 국제관계의 변화 속에서 고려의 역사의식은 과거로 확장되어 갔고 ‘우리나라’의 ‘우리(我)’는 과거 우리나라의 왕조를 포괄하는 의미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고려 말에 ‘고려인’은 선조 혈통과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개념으로 조정되어갔다. 고려 전기의 국가귀속의식을 보여주는 ‘고려인’이 고려 말에 와서는 종족적인 함의를 품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우리 동방(我東方)’도 기자 이래 수천년 역사를 담는 개념으로 조정되었다. 이는 고려 말로 갈수록 시간을 중심축으로 한 집단귀속의식으로 점차 조정되어 갔던 것을 보여준다.
‘삼한’은 韓이란 출자로 표현된, 정체성 있는 역사적 영역세계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시간을 중심축으로 한 집단귀속의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지만, 韓이 셋으로 분리된 것을 내포한 것이란 점에서 근원적으로 하나의 우리 종족 단위가 되기 어려운 한계가 있었다. 그런 한계는 고려 후기 ‘조선’의 재발견을 통해 극복되었다. 고려 말 ‘조선’은 고려의 별칭으로 활용되었고 國祖로서의 ‘조선’이 외교문서에서도 활용된 결과, 이후 신왕조 개국 후 조선으로 국호가 결정되는 배경이 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고려의 다원적 종족 구성과 ‘종족’ 인식
Ⅲ. 고려의 ‘我國·我東方’ 의식 추이와 ‘고려인’·‘조선’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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