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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홍기승 (국사편찬위원회)
저널정보
한국목간학회 목간과문자 목간과문자 제22호
발행연도
2019.6
수록면
57 - 76 (20page)
DOI
10.35302/wdis.2019.06.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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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성산산성 출토 목간은 6세기 신라 지방사회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이다. 이 글에서는 그동안의 연구 성과와 『韓國의 古代木簡Ⅱ』에 최종 정리된 판독문을 토대로 6세기 신라 촌락사회의 양상과 그에 대한 지배방식의 일면을 살펴보았다.
먼저 성산산성 목간에는 村 이외에 ‘本波’ ‘阿那’ ‘末那’ 등 이전의 금석문이나 사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용어들이 확인된다. 이들은 村을 구성하던 자연취락으로, 목간의 기재 순서로 볼 때 행정체계상 村의 하위단위로 파악되었다. 다만 모든 자연취락이 목간에 기재된 것이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으로 우세한 것부터 대상으로 삼았으리라 추정된다. 村이 있음에도 굳이 자연취락 단계까지 기록한 데서 이들에 대한 국가의 관심을 엿볼 수 있는데, 그 배경에는 자연취락의 성장을 유도하고 지원함으로써 촌락을 재편하고 지배체제를 강화하려던 의도가 있었다.
다음으로 중고기 신라의 村의 성격에 대해 검토하였다. 중고기 사료에 보이는 村의 이해를 두고 크게 행정촌설과 자연촌설로 의견이 나뉘는데, 이러한 견해차는 ‘지명+촌명’ 형식의 성산산성 목간의 해석에서도 나타난다. 검토 결과 이 형식은 ‘郡名+행정촌명’이 아니라 ‘행정촌+자연촌’으로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중고기 村은 자연촌과 행정촌 두 가지 용례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자연촌이 상위의 행정촌명을 생략한 채 단독으로 목간에 기록될 수 있었던 점에서 자연촌을 지방지배의 기층 단위로서 행정적 역할을 수행하던 독자적인 단위로 보아야 한다. 아울러 자연촌은 국가의 행정력에 의한 인위적인 재편을 거쳤다. 따라서 자연촌은 행정촌과 마찬가지로 지방지배를 위해 국가가 인위적으로 설정한 행정단위로서의 성격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역역동원 관련 문서목간에 보이는 村主를 살펴보았다. 문서목간은 기존의 일반적인 이해와 달리 촌주가 지방관과 엄격한 상하관계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중고기 촌주의 위상은 지역과 시기에 따라 다양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촌주의 영향력은 촌락사회의 변동과 국가의 제약 아래서 점차 축소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마침내 신라 중대가 되면 縣 단위 행정을 담당하는 말단관료적 존재로 탈바꿈하게 된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II. 촌락의 재편과 자연취락
III. 6세기 ‘村’의 성격
IV. 문서목간에 보이는 村主
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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