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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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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온지학회 온지논총 온지논총 제50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229 - 258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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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近은 1389년 6월에 고려를 떠나 남경에 갔다가 9월에 돌아온다. 당시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으로 정국을 주도하고 있었고, 왕실은 이성계와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권근은 남경에서 자문을 가지고 왔지만 대신들과 함께 열어보지 않고 직접 열어본다. 이 열어본 자문에서는 우왕과 창왕이 왕씨가 아니라는 것이 쟁점이 된다. 『明實錄』에는 우왕과 창왕이 왕씨가 아니라는 언급은 없었다. 자문 사건이 일어날 때 우왕은 이성계를 제거하려고 하였지만 실패한다. 이어 이색과 조민수가 실권에게 물러나게 되고, 우왕과 창왕이 처형된다. 모두 권근이 남경에 다녀온 후 몇 달 사이에 발생한 일연의 사건이다. 권근의 『奉使錄』을 보면 이동하는 노정에 따라 각기 다른 감회를 보이고 있다. 요동을 지나 북경에 들어갈 때는 四海一家, 崇明 같은 말을 자주한다. 진흙에서 꽃을 피우는 연꽃을 동경하며 자신의 심회를 보이기도 한다. 다시 通州에서 남경으로 갈 때에는 스스로를 泛梗에 비유하기도 하고, 산동을 지날 때에는 공자와 증점의 일화를 떠올리며 긴장된 자신의 마음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남경에서 고려로 돌아올 때는 崇明에 대한 말은 하지 않고 고향과 부모를 그리워하는 말만 한다. 고려에 거의 다가올 무렵인 孛蘭店驛에서는 앞으로 펼쳐질 운명을 낙관적으로 점치기도 한다. 권근은 남경에 다녀오면서 보고 들었던 사실을 『봉사록』에 기록하고 있다. 전쟁이 치열했던 당시 요하를 건널 때 수많은 배를 목격하였고, 운하를 건너면서 운하와 지명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남기기도 한다. 전란의 시대 국경을 건너 명나라에 살고 있는 고려 사람을 만났고, 산동성 蓬萊驛에서 배를 타고 旅順口에 도착할 때와 고려 근처에서 당시 있었던 왜구의 참상을 노래하기도 한다. 권근이 운하를 통하여 남경에 간 것은 훗날 崔溥가 표류하여 조선으로 되돌아 올 때까지 고려와 조선의 다른 사신들은 이 운하로 다녀간 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육로의 牛家莊은 청나라 때 통행이 금지된다. 牛家莊은 산동의 登州와 萊州로부터 遼河를 거쳐 동북지역으로 올 때 군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권근이 우가장을 지날 때에는 이미 北元이 몰락했을 때였다. 『奉使錄』을 통하여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를 권근이 사행한 시점에 묶어 두고 살필 수 있으며, 한 개인으로서 권근이 겪고 있던 시대적 고민과 현안 문제를 가장 가까이에서 살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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