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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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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84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143 - 167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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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영⋅정조 시대를 살았던 왕족여인 송 마리아와 천주교, 장자 상계군 담의 독살, 남편 은언군 인(정조의 이복동생)의 유배와 죽음, 손자 철종의 즉위와 복권 등을 통하여 송 마리아 가족 수난의 사례를 여성사적 입장에서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왕족여인 송 마리아(1753, 영조 29~1801, 순조 1)는 참봉 송낙휴의 딸이며,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 인의 처이다. 은언군 인과 혼인하여 3남1녀의 자녀를 두었다. 참봉의 딸인 송 마리아가 왕(정조)의 이복동생인 왕족 은언군 인과 혼인하면서 가족의 불행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아들과 남편이 역모를 주도하거나 가담함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정쟁속에서 역적으로 지목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들 상계군 담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린 나이에 독살당하고, 남편 은언군 인은 강화도로 유배보내졌다. 이런 환경 속에서 슬픔을 잊고 영혼을 구원하기위해 송 마리아는 며느리 신씨와 함께 천주교에 입교하였던 것이다. 그 후 강완숙으로부터 천주교 신앙과 교리를 배웠으며, 마침내 주문모 신부한테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1801년 송마리아 가족을 비호하던 정조와 정치적으로 대립관계였던 왕대비 정순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신유박해를 일으키자, 왕족여인 송 마리아와 며느리 신 마리아는 정순왕후의 하교에 의해 재판과 신문의 아무런 법적 형식도 거치지 않고 그해 3월 16일 사사되었다. 남편 은언군 인도 사학죄인이라는 명목으로 5월 29일에 사사되었던 것이다. 그 후 손자가 왕(철종)으로 즉위하면서 송 마리아 가족은 마침내 역모혐의에서 복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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