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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탐라문화 탐라문화 제59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7 - 39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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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일본의 식민지였던 대만과 조선의 전후처리과정에서 등장하였던 외세의 개입과 이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갈등의 집약체로서 제주4・3과 대만2・28에 대해 주목해 보았다. 두 사건 모두 국가에 의해 자행된 백색테러라는 공통점과 양민학살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카이로회담에서 조선은 신탁통치, 대만은 중화민국으로의 귀속이 결정되었다. 미군은 신탁통치 과정에서 일제의 체제를 활용하면서 오히려 대중들의 삶을 어렵게 만들었다. 미군정의 통치를 받게 된 남한에서는 인민위원회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특히, 인민위원회는 각 지역의 치안을 맡았는데, 제주도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이들은 농민, 노동자, 부녀자 등의 일반 민중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지만, 미군에게는 불만스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3・1절을 맞아 제주에서는 가두시위가 진행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미군정은 제주를 붉은 섬으로 인식하여 좌익세력을 척결하기로 한다. 이와 같은 미군정의 조치에 반발한 남로당은 1948년 4월 3일을 기해 무장봉기를 일으키게 되고, 그 진압과정에서 무차별적인 양민학살이 자행되었다. 대만은 중화민국으로 귀속되면서 국민당정부가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행정장관에 임명된 陳儀는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며 대만에 대한 본격적인 통치를 시행하였다. 하지만 陳儀로 대표되는 국민당정부의 대만통치는 대만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대만은 국민당정부의 전매제 실시와 중국대륙으로의 물자 매각이라는 요인으로 인해 상당한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당시 대만인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근대적인 교육과 의료시스템을 경험한 바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시행된 황민화정책으로 일본문화에 대해 상당히 익숙해 있었고, 국민당정부의 지도층은 이를 이해하고 파악하려는 노력대신 대만인이 노예화되었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이에 반하여 대만인들은 국민당정부의 관직독점과 부정부패에 불만을 가지게 된다. 대만인은 점점 조국으로 돌아간다는 기대는 버리게 되었고, 대만인들은 스스로를 본성인(本省人)이라 칭하며, 외성인(外省人)들과의 거리를 두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발생한 충돌이 바로 2・28사건이다. 말하자면 일본의 패전이후 변화된 국제정세로 인해 조선과 대만에 유입된 외세들이 현지인들과 빚어진 갈등에서 제주4・3과 대만2・28이 발발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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