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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한국학논총 제31권
발행연도
2009.1
수록면
1 - 38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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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朝鮮 이래 정치사회의 역사적 경험은 夫餘를 비롯한 三韓 등지에 직ㆍ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또한 漢郡縣의 통치체제를 경험하면서 그 조직이나 官名 등은 부여를 비롯한 東濊 및 高句麗 등 삼국 초기에 원용되기도 하였다. 夫餘 초기의 ‘君王’은 삼한 大國의 國邑 主帥가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곧 국읍의 주수는 자신의 세력기반을 떠나서 부여의 王京에 거주한 諸加層으로 성립하였고, 그들 가운데 최고 정점에 위치한 존재가 바로 부여의 ‘군왕’이라고 할 수 있다. 부여의 諸加는 그들이 별도로 관할하던 세력기반인 四出道의 크기에 따라 구분되었으며, 고구려의 大加와 小加처럼 分化되어갔다. 한편 邑落의 豪民은 예비 관료군의 성격을 갖는데, 이들은 고구려에서 大加가 自置했던 使者ㆍ皂依ㆍ先人과 연결되는 존재이다. 그리하여 부여 및 고구려의 통치체제는 점차 연맹왕을 정점으로 하는 일원적인 지배체제를 지향해 갔으며, 지방에 대한 통치도 諸加를 통한 간접적인 통제에서 벗어나 점차 직접적인 방식을 모색하면서 통치조직을 정비해 갔다. 고조선의 官名은 朝鮮侯의 稱王 이후부터 확인되며, 고조선 말에는 다양한 관명이 나타난다. 고조선의 관명은 실제 고조선 고유의 통치체계에 바탕을 둔 것인데, 제후적 존재로 보이는 博士 衛滿의 職任은 뒤이어 확인되는 족장적 연원의 ‘相’ 또는 ‘將軍’과 맥이 닿는다. 위만조선은 족적 유대감이 강한 크고 작은 족장세력을 중앙의 지배 신분층으로 편제하며 연맹왕국 체제를 성립시켰다. 곧 고조선의 지배체제는 부여ㆍ고구려의 ‘大加’에 비견되는 족장적 연원의 ‘相’職과 ‘將軍’職을 中心으로 편제되었다. 당시 ‘相’職을 소지한 인물은 적어도 小國 규모의 독자적인 세력기반을 가진 族長 출신이었으며, 將軍 또한 相과 더불어 재지 기반을 지닌 족장적 속성의 일면을 가졌다. 東濊는 중국 郡縣 및 高句麗 등의 간섭과 견제로 인적ㆍ물적 수탈을 강요당했으며, 동예의 읍락 거수가 소지한 관명을 비롯하여 不耐濊國의 屬吏名도 직ㆍ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실제로 侯ㆍ邑君ㆍ三老는 동예 거수들의 현실적인 세력 규모와 우열에 따라 차등 반영된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東部都尉가 관할한 領東7縣은 이 지역에 삼한 小國에 비견되는 정치체가 7개 이상 있었음을 알려주며, 그 가운데 治所였던 不耐縣은 유력한 세력이었다. 실제로 不耐濊侯는 功曹ㆍ主簿 등의 속리를 거느리면서 侯國의 면모를 보여 동예사회의 정치적 성장을 알려준다. 漢郡縣 관할 하의 영동7현에 갖추어졌던 屬吏制는 東部都尉가 폐지되면서 대부분 무너졌지만, 불내예국은 정치적 통합의 진전으로 필요했던 독자적인 官制를 과거 屬吏制의 틀을 활용하여 運用했다. 특히 不耐侯는 다시 不耐濊王으로 임명되었기 때문에 불내예국은 동예 지역의 유력한 정치세력으로 상정되며, 不耐侯와 屬吏의 속성은 각각 부여 및 고구려의 大加와 그들이 거느렸던 사자ㆍ조의ㆍ선인에 그 맥이 닿는다. 부여의 ‘加’官와 ‘使者’官의 성립연원은 각각 族長的 속성과 使役的 속성으로 구분된다. ‘大使’의 경우 기본적으로 ‘使者’官에 속하지만, 연맹왕국의 성장과 함께 夫餘王 직속의 내외 행정실무를 관장하였던 최고관직이며 전통적인 ‘使者’官의 신분적 한계를 넘어서 ‘加’官 계통의 인물이 보임되기도 하였다. 『삼국지』 고구려전의 관명은 나름의 서열에 의하여 제시되었는데, 고구려왕은 官等 사여 및 승급을 통하여, 편입된 那國 또는 那部에 대한 결속력을 도모하고 聯盟王의 지배력 관철을 강화하였다. 고구려 초기의 관명으로 相加ㆍ古雛加ㆍ對盧ㆍ沛者ㆍ優台 등은 족장적 속성을 지닌 夫餘의 ‘加’官에, 그리고 使役的 속성의 主簿ㆍ(丞)ㆍ使者ㆍ皂衣ㆍ先人은 夫餘의 ‘使者’官에 서로 연결된다. 특히 主簿ㆍ使者 등은 小國 및 大國 단계에 설치되었던 官名으로, 그 뒤 對盧ㆍ沛者ㆍ優台는 小國이나 大國의 수장을 중앙에 편제하는 방식으로 설치하여 고구려 초기의 官制를 성립시켰던 것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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