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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南冥學硏究 南冥學硏究 제52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1 - 41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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浩亭 河崙은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기에 걸쳐 仕宦한 고위관료이다. 조선 개국, 이방원의 등극, 조선의 제도와 典章의 확립 등 중요한 국가대사를 맡아 주도하였다. 그의 고위관료로서의 자취 때문에 문학적인면모는 소홀히 여겨져 지금까지는 연구한 바가 없어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는 실로 최고의 문학가였다. 그는 조선 초기 최고의 성리학자이고 문장가였다. 慶會樓의 記文을지었고, 圃隱 鄭夢周, 惕若齋 金九容 등 당시 최상급 문인들의 시집서문을 썼다. 그리고 고려 말 대문호로 그의 스승인 牧隱 李穡의 神道碑 銘을 지었다. 과거를 통해 출사한 文臣들이 직책에 맞는 능력을 갖추지 못 한 것을보고, 重試를 실시하여 능력을 보강하려는 제도를 만들었다. 호정은 4번 明나라를 다녀옴으로써 그 당시 문화 교류에 있어 가장큰 공헌을 했다. 鄭道傳이 경솔히 지은 表文이 明 太祖의 비위를 거슬렀을 때, 직접 명 태조를 만나 상세히 분명하게 전후사정을 간곡하게 진술하여 문제를 잘 해결하고 왔다. 또 建文帝와 永樂帝의 즉위식에 참석하였다. 돌아와서 지어 太宗에게 바친 「覲天庭」, 「受明命」 두 악장은 나중에 명나라 영락제에게도 알려져 외교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는 많은 시를 지었으나 대부분 없어지고 문집에 실려 있는 시는조선후기에 와서 수집한 시이다. 그 가운데 「漢江詩」는 漢陽 천도를송축하는 시인데, 그 속에 임금님을 諷諫하는 교훈이 들어 있다. 「嶺南樓」시는 절경 속의 嶺南樓가 名勝임을 부각시키고, 영남루에대한 애정을 담았다. 곧 성리학자들의 天人合一 사상이 배어 있다. 「慶會樓記」는 경회루의 중복과정을 서술하고 중건과정에서 君民一 體가 되는 조선 초기 건전한 국가적 氣運을 느낄 수 있고, 또 경회루의건물 구조 하나하나에 治道의 의미를 부여한 독특한 문장이다. 「矗石樓記」도 촉석루에 올라 풍경을 보면서 牧民官이 백성을 위해해야 할 일을 연상하도록 하여 단순한 물리적 건물로서의 촉석루가아니고, 목민관이 백성을 다스릴 방안을 창출해 내는 정신적 생산 공간으로서 의미를 부여했다. 浩亭의 시나 문장은 단순한 문예적인 시문에 그친 것이 아니고, 經世 濟民의 의미를 담은 전통 유학자의 충실한 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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