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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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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중국문화학회 중국학논총 중국학논총 제58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237 - 262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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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시 明 수군의 파병은 1597년 2월 경 결정되었다. 명 수군 중 선발대는 계금의 수군이었다. 계금의 수군은 조선에 입국한 후 얼마간 강화도 등 여타 지역에 머물러 있다가 1598년 2월 17일 경 고금도에서 조선수군과 합류하였다. 한편 복직되어 명 수군의 최고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던 진린은 광동수군 5천명을 거느리고 1598년 5월 16일에 요동에 도착하였다. 이 때 그의 아들인 좌영도사 진구경 등도 수병, 보병 낭토 군사 등을 이끌고 요동에 도착했었다. 진린은 이 군사들과 함께 1598년 7월 16일에 이순신이 주둔하고 있었던 고금도에 합류하였는데 이 때 조명연합수군이 결성되었다. 명 조정에서 조선에 수군을 파병하였던 것은 조선 수군이 일본군에게 패하여 제해권을 내 주게 되자 그들이 서해의 해로를 통해 명 본토의 요충지는 물론이고 북경까지 침입해 올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대마도 정벌을 꾀하고자 한 의도도 있었다. 조선에 파병된 진린의 명 수군은 이순신의 조선수군과 연합수군을 이룬 이후 첫 해전인 흥양의 절이도해전에서부터 예교성전투, 노량해전까지 참여하였다. 이 과정에서 진린의 명 수군은 제독 유정이 이끈 명 육군과는 달리 전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이에 힘입어 정유재란은 조선의 승리로 마무리되었고 마침내 임진왜란 7년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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