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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서태원 (목원대학교)
저널정보
역사실학회 역사와실학 歷史와實學 第72輯
발행연도
2020.8
수록면
293 - 328 (36page)
DOI
10.31335/HPTS.2020.08.72.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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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2일 충청남도 태안군 안흥성 앞에 위치한 신진도(新津島)의 한 폐가(廢家)에서 19세기 충청도 『당진현 수군과 수군보 군안』이 발견되었다. 군안은 일부만 발견되고 훼손된 경우도 있지만, 수군의 군안은 육군에 비해 매우 적고 특히 읍(邑)의 수군 군안은 처음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당진현 수군과 수군보 군안』의 기재 양식을 같은 시기의 ‘선기대, 평신진’ 등의 군안과 비교하면, 공통점은 군대에 편성된 해를 의미하는 간지(干支)가 모두 기재되고 용모 파악을 제대로 하지 않아 군병의 신장을 모두 4척으로 기록한 것이다. 반면 차이점은 당진현 군안은 직역을 수군과 수군보로만 기재했으나 다른 군안은 병종을 다양하게 또는 직역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였고, 당진현 군안은 다른 군안과 달리 소속처가 없으며, 아버지 이름은 중앙군인 선기대 군안만 정확히 기록되었다.
『당진현 수군과 수군보 군안』은 당진현감 권중완이 1844년 무렵 만들어진 군안을 토대로 자신의 재임기간인 1873~1877년에 작성하여, 1868년 9월 안흥첨사가 폐지된 후 안흥성에 6개월 머무르며 바다 방어를 주관하던 호서방어사인 태안부사가 병인·신미양요 후 재정 및 군사제도의 정비를 할 때 제출한 것으로 추측된다.
『당진현 수군과 수군보 군안』의 직역은 수군과 수군보로 구분되었다. 수군은 안흥진에 수군전을 납부하고 현역 복무를 면제받았으므로, 수군보와 군역부담이 같았다. 그런데도 수군과 수군보를 구별한 것은, 군포를 납부하는 수군과 주사군으로 나뉘기 이전에 호수이며 정군인 수군을 보로 그리고 수군보는 말보(末保)로 간주하여 수군 중심으로 군병을 충원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군안 작성 이유가 재정적 목적 외에 군사적 목적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수군과 수군보가 처음 군역에 편성된 연령대와 수는 59명 중 10대가 약 78%인 46명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15세가 약 54.2%인 32명으로 압도적이었는데, ‘군대 신설, 전쟁·전염병·사고로 인한 16세 이상의 남정(男丁) 부족, 15세 대년군의 원군 승격, 군역 담당층 확대’ 등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당진현 수군과 수군보의 거주지와 수는 ‘내맹면 12명, 하대면 12명(상서면 1명 포함), 고산면 10명, 외맹면 10명, 상대면 10명, 현내면 4명, 남면 3명, 동면 2명, 상서면 1명’이었다. 그 이유는 수군과 수군보는 주사군 등에 결원이 있을 때 실제 복무하는 군병으로 편입될 수 있으므로, 선박처 가까이에 그리고 바닷가에서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편성하였기 때문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기재양식
Ⅲ. 작성시기와 작성자
Ⅳ. 기재 내용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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