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 미술사 강좌 미술사 제46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135 - 163 (29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근대 동아시아와 유럽은 중국발 유상채 자기의 절대적 영향 하에 그들만의 자기 문화를 구축하고 있었다. 반면 조선은 여전히 청화백자의 생산과 사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럼에도 조선 후기의 자기문화를 들여다보면 중국 유상채 자기의 유입과 사용이 상당 이루어졌음이 문헌기록 및 출토·현존 유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上品의 청화백자를 생산할 수 있었던 조선에게 중국의 청화백자는 더 이상 매력 있는 상품이 아니었으며 모방의 대상도 아니었다. 그러나 유상채 자기는 청화백자로 모방할 정도로 상당한 애호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존하는 수량이 절대 부족하고 종류 또한 많지 않아 조선 후기 사회에 유통·소비된 유상채 자기를 심도 있게 연구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점은 분명 한계로 지적된다. 다행히 조선왕실 소용 자기나 왕족일가의 유물 중 청대 유상채 자기가 남아 있어 이런 부분을 어느 정도 보강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지금까지 조선사회에 유통되는 중국산 수입자기들에 대한 일반적 시각은 양국 간의 정치, 경제, 문화 교섭 하의 부산물로 다루어져 왔다. 물론 오랜 기간 자기제조업과 시장 형성이 국가에 의해 통제되어 발전과 확산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나, 19세기는 국력의 쇠락화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대규모 상인집단의 매매 및 국가 간의 교역 활동을 통하여 자기시장이 유지되어 왔다. 이는 자기 생산과 소비에 있어 국가의 통제가 다소 엄격했던 18세기와는 구분되는 중요한 요소라고 판단된다. 19세기 조선왕실에서 소용되었던 중국 자기들의 성격과 그 유입과정이 이전과는 분명 달랐을 것이다. 본 연구는 이 현상을 상기하며, 19세기 조선왕실 소용 자기들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